[오수정의 목요담론] 원도심에서의 시작

[오수정의 목요담론] 원도심에서의 시작
  • 입력 : 2025. 02.13(목) 03:3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지난해 9월, 신제주에 있던 사무실 청사를 원도심으로 이전했다. 과거 김정 목사가 세웠다던 삼천서당이 있었던 터에 과감히 정착한 것이다. 뒤로는 공신정과 동성(東城)의 흔적을 담은 역사유적이 감싸고 있다. 앞으로는 항구와 접해있는 산지천의 푸른 생태계가 시야에 펼쳐진다. 원도심에서 재출발하는 청사 생활은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 원도심은 탐라 문화의 발상지이다. 2000여 년 전 해상활동으로 외국과 교류를 했던 흔적도 담고 있다. 탐라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행정과 군사 소재지이자 변방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근까지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을 선도해 왔다.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조선시대 읍성 안의 생명수였던 산지천을 들 수 있겠다. 조선 초기 해자의 역할은 물론 왜구가 침입해 오는 위기마다 방어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평상시에는 주민들의 공동 빨래터, 공동 식수, 목욕, 물놀이 장소로 이용됐다. 제주 생활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산업화되면서 이곳 역시 개발사업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8~90년대에는 동문시장 앞에서부터 부두까지 주상복합 지상 건축물 14동을 건축하고, 총 243개의 상가가 운영됐다. 이때만 해도 칠성로와 함께 최대의 번화가로 꼽혔다. 비록 1995년에 철거돼 다시 복원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제주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 중 하나다.

지금 용천수와 함께 밀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경관은 생활용수로 사용됐던 시절로 회복한 듯하다. 흐르는 물은 왜가리와 백로, 갈매기를 불러들여 노닐게 한다. 수면 아래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숭어 떼들의 손짓은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제 역사와 문화, 생태와 경제가 함께 이야기를 담아왔던 공간에 정착한 지 수개월이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인문적, 경관적 모습에 매료된 내 생각과는 달리 이곳을 떠난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두 집 걸러 빈 점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학창 시절 인파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휑하기만 하다. 저녁 시간과 함께 상가 문이 닫히고 빨리 어두워지는 거리는 다음날이 돼야 다시 볼 수 있다. 그래서 원도심인가 싶다.

이런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에서도 효과적인 지원 사업들을 추진하기에 바쁘다. 많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머리 맞대어 수년째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해법제시를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체감은 크지 않다.

한때 원도심 재생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원인과 결과만을 따졌던 내가 원도심 안에 있다. 사이사이 숨어있는 맛집도 이용해 보고, 어쩌다 한번 다녀갔던 동문시장을 항상 옆에서 끼고 본다. 어릴 적 좋아했던 호떡도 명물이다. 건물 사이사이 놓여 있는 표지석만으로도 역사가 있는 도시를 즐긴다. 결국은 내가 원도심에 있어야 재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관리실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68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