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콘클라베] 포기의 반대말

[영화觀/ 콘클라베] 포기의 반대말
  • 입력 : 2025. 03.17(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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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의 한 장면.

[한라일보] 신과 인간 사이에서 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신을 믿지는 않지만 믿는 이들에게 신은 막강한 존재다. 신의 힘을 그저 권력 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은 존재하나 실체로 모두를 설득할 수 없고 그 힘은 강력하나 완력과는 다르다. 신의 대리인들은 믿음으로 지속되는 삶을 사는 이들이다. 그들이 신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면 자신의 삶을 잊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믿음을 잃지 않는 일, 믿지 않는 자들이 감히 알 것 같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삶이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영화 [콘클라베]는 신의 대리인 격이라 할 수 있는 교황을 선출하는 베일에 쌓인 선거 '콘클라베'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교황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자리를 대신할 이를 뽑기 위해 전세계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모여든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외부와 단절된 추기경들은 3분의 2이상의 득표를 얻는 한 명의 후보가 나올 때까지 매일 '콘클라베'에 참여한다. 모두가 차기 교황 후보인 동시에 유권자인 숨 막히는 비밀 투표가 장기화 되면서 유력한 후보였던 이들의 치부가 드러난다. 신성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성당 안은 어느새 음모와 탐욕이 내뿜는 유독한 인간의 내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콘클라베'를 관장하게 된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이 혼돈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이라는 마지막 지점에 도달해야만 하는 미션을 가진 일직선의 드라마인 동시에 우아하고 엄숙하게 보였던 모든 요소들이 그 일차선 도로로 뛰어들어 예상하지 못한 레이싱을 펼치는 격렬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정교한 의상과 매혹적인 촬영, 리드미컬한 편집 그리고 장면의 앞을 마치 호외요!를 외치는 소년의 움직임처럼 날쌔게 등장하는 음악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근사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콘클라베]는 눈과 귀를 매혹시키는 영화다. 또한 종교 영화나 정치 스릴러의 외피를 가뿐하게 뛰어 넘으며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계단식으로 전개하는 각본의 품격과 정중동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주인공 랄프 파인즈의 농익은 연기, 기품 있는 전쟁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연출했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세련된 지휘까지 관객으로서 대접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정도로 두둑한 포만감을 주는 영화기도 하다.



그런데 잘 차려진 코스 요리를 먹은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서면서 영화가 남긴 문장 하나가 내게 소화되지 않고 걸린 듯 했다. 영화 속에서 로렌스가 했던 말로 '가장 위험한 것은 의심을 품지 않는 확신이다'라는 말이었다. 종교 지도자를 선출하는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물론 영화관의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이 문장이 내게도 가시처럼 박혔다. 로렌스는 이어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는 것은 의심과 함께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신의 대리인인 교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추기경들은 스스로와 타인에 대한 의심과 확신을 동시에 가질 수 밖에 없고 숨겨진 욕망은 수시로 옳은 판단의 접두어가 되려고 한다. 그렇게 뒤엉킨 채로 신에게 다가가려는, 나와 타인에게 멀어지려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비단 이 상황이 종교 지도자의 선출 과정인 '콘클라베'에만 있는 일이 아님을 느꼈다. 그때 그 가시 같은 말이 향하고 있는 무수한 작금의 경화된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흠 하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으며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는 무결한 존재가 세상에 있겠는가. 허나 흠은 메꿀 수 있는 틈이며 삶의 먼지를 수시로 떼는 일 또한 특히 집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고자 하는 이에겐 응당 필요한 태도가 아닐 리 없다. 흠을 인정하고 결함을 채우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그렇게 큰 욕망은 아니리라 믿는다. 동시에 흠과 결함의 복원에 기울이는 누군가의 지극한 노력을 지켜보는 태도를 갖는 것 또한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콘클라베]는 마침내 의심의 징검다리를 건너 경직된 확신의 베일을 벗기고 가장 중요한 가치에 이르는 폭풍 같은 고요의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내가 온전히 믿는 것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실의가 아닌 안도의 마음으로 받아 들일 때, 불변의 진리라는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낸 무수한 손들의 움직임과 형형하게 빛나는 눈둥자들을 마침내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간절한 의심은 그렇게 포기의 반대말이 되어 용기와 손을 잡는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드문 기적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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