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오디언스와 환상의 문

[영화觀] 오디언스와 환상의 문
  • 입력 : 2025. 02.10(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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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한라일보]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이 지난 해 크리스마스 개봉 이후 2달이 채 안되는 시점에 11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 70개가 되지 않는 상영관에서 시작한 [더 폴]의 이와 같은 흥행 기록은 이변에 가까운 일이다. 2008년 국내에서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이 작품은 무려 16년 만의 재개봉을 통해 40만 관객을 동원한 [서브스턴스]와 함께 올 겨울 아트 영화 시장의 호황을 견인한 쌍두마차라 할 수 있겠다. 기록적인 흥행에 영화를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은 내한 행사를 통해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10여 차례가 넘는 관객과의 대화와 기자 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라며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겠다'라고 행복함을 감추지 못하는 타셈 싱 감독과 예술 영화가 좀처럼 상영되기 어려운 멀티플렉스의 대형 상영관까지 매진 시키며 그의 작품과 행보에 열렬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한국의 관객들이 만들어 내는 진풍경이 올 겨울 국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중이다. 물론 16년 전에는 타셈 싱 감독을 비롯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화 [더 폴]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스턴트 맨 로이(리 페이스)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호기심 많은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루카)의 이야기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는 시간'을 공유하며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이야기의 여정'이 작품의 기둥이 되고 수많은 광고 작업을 통해 익히 그 감각과 역량을 인정 받은 타셈 싱 감독의 비쥬얼리스트로서의 압도적 장기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오브제들이 이야기의 기둥을 유려하게 감싸는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구현한 [더 폴]의 경이로운 이미지들은 마치 고전 그림 동화책의 풍미를 그대로 구현한 듯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다섯명의 무법자들이 겪는 모험담은 이야기의 화자와 청자인 두 사람의 관계와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해가며 정형화되지 않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경로를 수시로 이탈하며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더 폴] 특유의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은 지금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강력한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타셈 싱 감독의 믿기 힘들 정도의 애착과 노력이 시간이 흐른 뒤 더 진한 감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가성비의 시대라고 할 만큼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도착한 [더 폴]이라는 노작이 왜 관객들에게 감동을 남기는지는 작금의 한국 영화계도 곱씹을 만한 화두다.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위해 로케이션 헌팅에만 19년,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낼 아역 배우를 찾는 데만 9년의 시간을 쓴 타셈 싱 감독은 전 세계 24개 지역에서 이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냈다. 또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친밀함의 마법'을 통해 서로의 세계관을 공유하게 되는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 또한 관객들의 마음 깊이 스며든다. 닮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연령, 성별, 나이, 경험 등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며 이야기의 안으로 깊숙하게 빠져드는 모습은 지금의 한국 관객들과 타셈 싱 감독이 만들어 내는 관계의 형태와도 닮아 있다. 늦지 도착한 편지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을 읽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답장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더 폴]의 한국 재개봉은 창작자와 대중 사이에 마법처럼 만들어진 러브 레터의 징검다리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창작에서 관객의 존재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타겟을 설정한다고 해도 오류를 범하는 일은 비일비재고 나의 모든 것이 타인의 작은 부분에도 닿지 않는 일 또한 빈번하다. 그래서 수신인을 잘못 적은 것처럼 애태우는 날들이 창작자들의 밤에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진심과 전력을 다해 만든 이야기는 언젠가 누군가의 눈과 귀와 가슴에 도착할 것이라는 낭만의 약속을 지금 이 곳에서 [더 폴]이 보여주고 있다. 오랜만에 러빙 하이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획득한 타셈 싱 감독도,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를 보물 찾기처럼 찾아낸 기분으로 벅차 오른 한국의 관객들도 지금은 그 마법과 낭만을, 고될 여정과 상상치도 못할 도착의 고양감을 온전히 믿고 있다. 수없이 많고 영원히 이어질 또 다른 이야기들이 그렇게 다시 탄생할 채비를 마쳤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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