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흩날리는 벚꽃 아래 다시 맞는 4월

[진선희의 백록담] 흩날리는 벚꽃 아래 다시 맞는 4월
  • 입력 : 2025. 03.31(월) 03: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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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대학 가는 길에 차량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맘때면 흔하게 보는 모습이다. 제주 벚꽃 명소로 꼽히는 그 길엔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면 연분홍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과 도민들이 몰린다. 얼마 전 찾은 제주대학교 입구 '왕벚나무 길'이다. 그 길은 1983년 초대 총장 당시에 제주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려 1주년이 되는 해에 진입로 1000m 구간에 8년생 왕벚나무 250그루를 심으면서 조성(제주대 '왕벚나무 길' 안내판)됐다.

1989년 4월 3일 그날도 그곳에 벚꽃들이 피어났다. 이날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서울의 제주사회문제협의회가 제주시민회관에서 제주4·3추모제를 지냈다. 이 추모제는 4·3 이후 공개적으로 행한 첫 추모 행사였다. 같은 날 제주대에서 열린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주최 추모제에서는 '왕벚나무 길'을 지나 관덕정까지 추모대행진을 계획했으나 경찰의 진압에 막혔다. 봄날 벚꽃 아래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그해의 시위 현장은 지금의 제주대 학생회관 건물 3층 '4·3 작은 전시관'에 걸린 몇 장의 흑백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2014년 '4·3희생자 추념일'을 법정 기념일로 거행하기까지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쳤다.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탄압, 왜곡, 무관심 등을 딛고 4·3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공감하고 연대한 결과다.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 '진상규명운동사'를 정리한 글에는 "법정 기념일 지정을 계기로 4·3문제의 해법은 국민 통합과 화합의 국정 과제를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4·3사건을 둘러싸고 빚어진 이념 논쟁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라고 했다.

제주도민들은 그런 기대감을 안고 해마다 돌아오는 4·3희생자 추념식이 국가 기념일이라는 격에 맞게 국민적 행사로 치러지길 바랐다. 매년 유족회 등에서 대통령 참석을 요청하고 제주발 추념사에 주목했던 이유다.

탄핵 정국 속에 다가온 제77주년 4·3추념식 본행사는 국회의장의 '인사말씀'이 더해지고 어린이합창과 어울린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로 막을 내릴 예정이지만 누가 추념사를 할지는 여태껏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기일이 안갯속이어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참석 여부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4·3추념식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상 설치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가 '주빈'을 맡아 왔다.

정부 주관 기념일 지정 이래 지난 11년 동안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해 직접 추념사를 읽은 이는 대통령 3회, 대통령 당선인 1회, 대통령 권한대행 1회, 총리 6회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나라의 혼란과 분열 상황이 거의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머지않은 4·3추념식에선 정부를 대표해 낭독하는 추념사에 과거사를 교훈 삼아 진심 어린 화합의 메시지가 담겼으면 한다. <진선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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