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나는 회전하므로 입장이 번복됩니다.
내부와 외부는 나로 하여금 교차합니다.
나의 내부는 외부가, 나의 외부는 내부가 되어
공존을 도모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반복적으로 중단을 사유합니다.
내 몸에, 이 순간에 도사리는 안과 밖이
이토록 함께 간섭하다니.
나는 놀라움으로 하여금 조작을 하여
회전문을 더욱 빠르게 작동합니다. 더욱 빠르게 넘나듭니다.
그래서 경계는 도리어 뚜렷해지며
내부는 능숙하게 외부가 되고, 외부는 능숙하게 내부가 됩니다.
그럴수록 나는 바깥을 몽상합니다.
그럴 듯 하게 중단을 사유합니다.
![](/upimages/files/202502/767813-0.jpg)
삽화=배수연
내부와 외부가 교차한다는 것도, 그 둘의 공존을 도모한다는 것도, 반복적으로 중단을 사유한다는 것도 '내'가 회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회전하는 존재이며, 회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내부와 외부가 따로 있지 않고, 그건 또 상상적 경계이기 때문에 "이 순간"에 접속한다. 안과 밖이 회전한다는 것이야 말로 안과 밖을 바꿀 수 있으며, 풍경 자체까지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함께 시인을 간섭하므로 시인의 놀라움이 되고, 이 발견에 의해 시인은 "더욱 빠르게" 경계를 살게 되지만, 전속력으로 달린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한편으로 회전문은 일종의 공간이기에 휑하게 비어 있는 시간이 있는데, 경계가 또렷해질수록 시인은 "바깥"을 몽상하게 된다. 그것은 또다른 세계를 향하는 일이고, 그 일을 위해 나는 그럴듯하게 "중단"을 사유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모종의 '입장'이란 외부와 내부가 무수히 스치고 닿는 비할 데 없는 느낌을 간직한 채 공간을 돌아다니는 회전문이랄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로 존재했던 당신이 불쑥 회전문을 밀고 들어설 수도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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