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밥-김승희
[한라일보]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삽화=배수연
어두운 새벽, 새벽이 어두워서 밥솥을 연다고 주위가 환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쌀밥이 모락모락 하얀 김과 함께 드러나고 거기 고슬고슬한 흰빛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밥솥에 밥이 없고 하얀 별들만 하늘을 이루고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는 시인은 밥이든 별이든 '있다'고 쓴다. 밥을 별로 읽으면 감탄스럽지만 별을 밥이라 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사람에게, 영혼을 지켜주는 그 별이 언제 쌀이 될 수 있을지 알려줄 수 없을 때, 우리는 끝까지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런 시간을 새벽을 기다린다고 하는지 모른다. 그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이 되지 않는 삶을 우리는 삶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나 이유는 충분히 다 있지만, 새벽에 일 나가는 누군가를 위해 밥솥에 흰쌀밥이 되어주는 데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가난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가난은 모두의 가난일 수 있으며, 가난은 "밥솥"을 열어보는 것처럼 가까이서 보는 것이라서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내 안에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는지. <시인>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