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교래 들판 지나갈 때는
바람이 되리
방자하게 불어대는
바람이 되리
생각에 잠겨있는 억새꽃수풀
가만두지 않으리
마구 흔들어 더더욱 몸부림치게 하리
산안개 몰아서
조랑말떼로 달리게 하리
산굼부리 벼랑으로 곤두박질치며
흘러가게 하리
아직 길들지 않은 들판
교래 들판 지날 때는
미친 듯한 바람으로 가리
거침없으리

삽화=배수연
이 시에 쓰인 '바람'은 무릇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독기 같은 것인데, 그 감각은 다른 감각을 들어설 자리 없게 만드는, 말하자면 미로를 헤매기 쉬운 인생에 뛰어든 수레바퀴로 세상을 사랑하는 단호한 움직임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화자의 갈망이며 억새꽃수풀과의 교감이며 이미 있는 존재를 흔들어 더욱 농익게 하고 새롭게 하려는 의지의 휩쓸림일 터이다. 산안개를 조랑말떼로 몰고 벼랑으로 곤두박질해서 흘러가게 하려는 야생의 노래가 교래 들판을 지날 때의 경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바람이 호명되자마자 동시에 재현되는 듯한 방자함, 몸부림, 곤두박질 등 에너지 넘치는 언어들이 겹쳐 쌓이는 직물처럼 펄럭인다. 마치 세련된 나머지 빈곤해지고 만 세상의 사유를 두려움 없이 넘어가려는 "바람"의 상상력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차갑거나 뜨거운, 부드럽거나 사나운 '바람'의 명성을 무색하게 한다. 이 시에서 '바람'은 내면에서 불어와 다른 내면으로 건너가는 시인의 자질이다. 이로써 "바람이 되리"라는 자기 다짐은 여분의 인생을 등에 얹은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 되어버린다. 물론 "바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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