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의 월요논단] 건입동마을조합과 로치데일의 꿈

[김명범의 월요논단] 건입동마을조합과 로치데일의 꿈
  • 입력 : 2025. 03.10(월)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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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올해는 유엔이 두 번째로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다. 왜 2012년에 이어 13년 만에 다시 한번 지정했을까. 유엔이 내건 슬로건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다.

세계 최초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에서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이다. 맨체스터 북부의 방직 노동자 28명이 1파운드씩 출자해 설립했다. 처음 문을 연 상점에서는 밀가루, 설탕, 버터, 양초 등 소량의 생필품을 들여와 조합원들에게 팔았다. 정확한 물량, 공정한 품질, 저렴한 가격은 물론 이용액 배당이라는 운영 방식 덕분에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생산, 유통, 교육, 자치의 권력을 재배치하는 원대한 목표다. 협동을 통해 이 네 가지가 이뤄진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로치데일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의 일과 삶의 새로운 방식은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내에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된 이후 2024년 현재 2만65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제주 지역의 경우 2015년 116개였던 협동조합이 현재 370개소로 늘었다. 5개소에 불과하던 사회적협동조합도 40여 개로 증가했다. 10년 사이 8배 증가하는 등 양적으로는 성장한 셈이지만, 질적 발전을 이뤘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복지 위기, 고용 위기, 기후 위기, 마을공동체 쇠락의 위기 등 다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공유의 비극'을 쓴 엘리너 오스트롬은 협동조합의 힘은 경제적 효율성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중층적이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경제 영역, 특히 사회적협동조합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아 보인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 건입동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분주했다. 마을기업 신규 지정을 위한 행정안전부 현장 실사가 진행됐다. 제주를 찾은 고위 공직자는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치적 격랑 속에서 마을기업지원법 하나 제대로 제정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허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얼마 후 건입동마을조합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장을 꽉 채운 조합원들의 열기에 새삼 놀랐다.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는 올해야말로 김만덕 마을, 건입동 마을공동체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시험대에 오른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시 거점형 김만덕 다함께 돌봄센터 개소와 공동체 복합센터 준공 등 공동이용시설 설치가 남아있다. 주민 주도적으로 사후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마을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공동이용시설 운영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 합리적인 위수탁 계약 체결을 통해 공간 운용의 효용성 극대화도 꾀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마을의 순환 경제를 구축해 마을의 부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재구성하는 주체적 대응 과정이다. 더 많은 소통과 신뢰를 쌓아가는 한 해가 된다면, 로치데일의 꿈은 결코 멀지 않다. <김명범 행정학 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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