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22] 3부 오름-(81)모지오름, 산등성이가 평평한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22] 3부 오름-(81)모지오름, 산등성이가 평평한 오름
모지오름이 모자란 오름? 경천동지할 웃음거리
  • 입력 : 2025. 04.01(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익숙한 듯 기묘한 이름

[한라일보]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산22번지 일대다. 표고 305.8m, 자체 높이 86m, 둘레 3802m로 꽤 큰 오름이다. 모지오름 지명에 대해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서는 북동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 안에 표고 268m, 자체 높이 13m의 알오름이 있는데, 이를 에워싸는 등성마루가 마치 어린애를 품은 어머니의 모습이라 해 모지오름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이같이 아이가 유모에게 안긴 듯한 모습인 데서 연유한다거나, 남제주군의 고유지명이라는 책에서는 뭇지오름은 모자오름의 변형이고, 한자표기화에 의해서 모지악(母地岳)이라고 하며, 그 이유는 이 오름의 지형지세가 어머니가 아기를 안은 것과 같은 형체라 해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비치미오름(북쪽)에서 바라본 모지오름.(왼쪽 오름, 오른쪽은 따라비오름) 김찬수

1703년 탐라순력도에서 첫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두지악(䢏止岳)이라 표기했는데 이는 참으로 기이한 표기다. 그 이후의 여러 고전에도 두지악(䢏止岳)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또한 정의군지도에는 무지악(無止岳), 증보 탐라지 등에는 무지악(毋地岳), 이후 모지악(母旨岳) 등으로 표기한 예도 나타난다. 지역에서는 모자악(母子岳), 모지악(母池岳), 모지악(母地岳). 무지악(武地岳), 무지악(毋地岳), 무지악(舞地岳), 무지악(茂枝岳) 등으로 쓴다고 한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에 모지오름으로 표기했다. 어딘가 익숙한 듯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기묘한 이름이기도 하다.



말굽형이어서 모자란 오름?

지금까지 검색되는 이 오름 지명은 모두 10가지다. 그중 두지악(䢏止岳)이라는 표기를 제외하면 모자악(母子岳), 모지악(母旨岳), 모지악(母池岳), 모지악(母地岳.) 등 '모'로 시작하는 표기가 4개다. '무'로 시작하는 표기는 무지악(舞地岳), 무지악(武地岳), 무지악(毋地岳), 무지악(無止岳), 무지악(茂枝岳) 등 5개다. 두지악(䢏止岳)은 '두(䢏)'가 '무지 두'이니 역시 '무'로 시작하는 표기다. 이 '두지악(䢏止岳)'이란 표기는 '무지+지+악'으로 읽히므로 '무지'에 '지'가 덧붙은 표기임을 알 수 있다. 본질은 이 '무지+지'를 쓰고자 한 '두(䢏)'의 훈 '무지'가 훈독자 즉, 정말 이 '두((䢏)'의 본래의 뜻인 '무지(한 섬이 못 되는 채 못 되는 곡식의 양)'로 썼는가 아니면 그냥 발음만 그렇다는 훈가자로 썼는가이다.

개오름(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지오름.(왼쪽부터 영주산, 모지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스미) 김찬수

이 '두지악(䢏止岳)'이란 '뭇지악' 혹은 '무찌오름'을 한자차용표기한 것이며, 섬(石)이 차지 않은 곡식의 양을 뜻하는 고유어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서 '모자란 오름'이라는 뜻이라고 한 학자가 있다. 무지악(舞地岳), 무지악(無止岳), 무지악(毋止岳) 등도 뭇지악의 한자차용표기라 주장했다. 무지(無止), 무지(毋止) 등도 모두 '뭇지'의 음가자 결합표기라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 이 오름 동쪽이 서쪽으로 움푹 들어간 형세 즉, 오름 북동쪽이 크게 벌어진 형세여서 모자란 오름이라는 것이다.

한쪽으로 크게 벌어진 오름을 화산 지형학에서는 말굽형 오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학자는 말굽형 오름을 과거 제주도민들은 모자란 오름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1997년 제주도 발행 '제주의 오름'에 따르면 말굽형 오름은 제주도 내에 분포하는 368개 중 174개다. 전체 오름의 47.3%에 해당한다. 그럼 제주 오름의 거의 절반은 모자란 오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모자라다란 뜻을 갖는 '뭇지'형 지명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야 할 것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에 하나라도 검색되는 여러 지명 중 '모자', '모지' 등 '모자라다'와 어형이 유사한 데서 견인돼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경천동지할 웃음거리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터진 오름은 무수히 많다. 이걸 모자란 오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뭇지'가 됐건 '무지'가 됐건 한 섬이 안 되는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 말이긴 해도 모자란 양이란 뜻을 갖는 건 더욱 아니다.

따라비오름(남서쪽)에서 바라본 모지오름. 김찬수



퉁구스어 '무루' 일본어 '무네', 국어 '마루'는 같은 기원

두지악(䢏止岳)이라는 지명 속에 들어 있는 '무지' 외에도 이 오름 지명에 들어 있는 '모자(母子)', '모지(母旨)', '모지(母池)', '모지(母地)'. '무지(舞地)', '무지(武地)', '무지(毋地)', '무지(無止)', '무지(茂枝)' 등은 무얼 나타내는 것인가?

이 말은 '모(무)+지'의 구조다. 북동쪽이 열린 말굽형 오름이긴 하지만, 이 오름은 산등성이가 평평한 특성을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위가 평평하다. 용마루, 등성마루같이 위가 평평한 지형을 퉁구스어권에서는 '무루' 혹은 '물루'라고 한다. 일본고어에서는 '무네'로 분화했으며, 오늘날 우리 국어에서 '마루'가 됐다. 제주도에서는 어느 시기에 '무루' 혹은 이걸 축약한 '무'라고도 했을 것이다. 점차 언어사회가 교체되면서 '마르'가 유입됐고, 이 말은 '미', '뫼'로도 축약했던 것처럼 '모'로도 축약이 됐을 것이다. 모지오름에서 '무지' 혹은 '모지'로 나타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지'라는 말은 '마루'를 '무' 혹은 '모'로 부르던 언어사회에서 '마루'라는 언어사회로 교체되는 시기에 '무마루' 혹은 '모마루'라고 했던 언어의 잔영이다. 이 '지'란 말은 마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즉, '지(旨)'에서 온 말로써 '마루'를 의미한다. 1576년 간행한 신증유합에는 '마라 지'로 설명했다. 마루(房), 등성이(산)의 뜻으로 썼다. 모지오름은 윗부분이 평평한 등성이를 가졌다고 해서 고대인들은 '무' 혹은 '모'라고 한 지명에 다시 '마루 지(旨)'를 덧붙여 쓴 것이다. 사실 그 높이나 넓이에 크게 상관없이 '마르'라는 지명은 제주도에 상당히 널리 사용된다. 모지오름은 모자란 오름이라는 뜻이 아니다. 산등성이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16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