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39년… 나이 60 넘어 작품 꺼냅니다"

"꾸역꾸역 39년… 나이 60 넘어 작품 꺼냅니다"
양기훈 작가 첫 공간조형전
1986~2025 이은 누적의 힘
"난생 처음 본 것 만드는 게 작가…
미술,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 입력 : 2025. 02.18(화) 18:19  수정 : 2025. 02. 20(목) 07:52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양기훈 작가가 '귤의 여신'의 귓속말을 듣고 있다. 그의 첫 조형전에 전시 중인 이 작품의 제목은 '귤의 여신 탄생'(2020~2025)이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공간 제작 역량이 쌓여야 평면 장악력이 생긴다." 39년 전, 머리에 새겨진 이 말로 살았다. 그의 말처럼 "꾸역꾸역" 걸어온 길이었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처음 여는 조형 개인전은 수십 년 세월의 '누적의 힘'을 보여준다. 양기훈(62) 작가가 열고 있는 '양기훈 1986~2025 2025~1986 공간조형전'이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캔버스 앞에만 있지 않았다. 작업 무대는 사실상 '제주섬'이었다. 그가 돌을 깎고 다듬어 만든 조형물은 '공공미술'이 됐다. 제주문학관 앞 제주시 연북로에 있는 길이 150m의 돌난간도 알고 보면 그의 작품이다. 산지천 등 공공 영역에 더해 민간까지 범위를 넓히면 도내 150여 곳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런 노동의 시간이 1986년부터 지금까지 39년, 비로소 첫 조형전을 열고 있다.

왜 전시회를 열지 않느냐는 말도 많았다. 주변에선 "약을 올리기도" 했단다. 그때마다 어물쩍 넘어가듯, 첫 전시회는 60이 넘으면 할 거라고 했다. 얼핏 농담 같지만, "스승 복이 많다"는 양 작가는 "대학교 때 동양학과 교수였던 은사님이 육십이 넘어 첫 개인전을 했던 게 각인이 됐다"고 말했다. '어찌 풋감을 먹는단 말이냐.' 아직도 기억하는 스승의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돌대가리의 탄생'(2003)은 곧 작가 개인, 그의 작품을 엿보게 한다. 스스로를 '악동', '돌대가리'라고 할 만큼 특이한 구석이 있는 그는 "한 번 새기면 지워지지 않는 게 돌대가리의 장점"이라며 크게 웃었다.

"거창한 예술혼, 예술관을 다 떠나서 (지금까지 작가로 살게 한 것은) 돌에 새겨진 원고지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스승의 가르침, 그 몇 개의 문장이었습니다. 예술가와 예술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법도 (스승에게) 교육 받은 대로 살았고요. 인간을 위한 미술, 인간을 위한 음악, 휴먼(human)이 분모로 작용하지 않는, 함수 관계를 지니지 못하는 예술은 후세들의 평가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미술은 '휴먼 아트'(human art),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각인된 말들이 그의 작품의 뿌리가 됐다.

전시 공간인 '문화공간 YOU' 건물 바깥에 설치된 양 작가의 작품 '돌대가리의 탄생'(2003).

오는 3월 5일까지 계속되는 그의 전시에는 조형작품만 약 40점이 전시됐다. 돌과 나무를 깎아 만들거나 석고 등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17년을 처마 밑에 두고 빗방울로 세월을 묘사해 서서히 소멸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Who are you'(2004)와 해녀였던 어머니를 표현한 '어머니의 바다'(1989) 등이다. 길이 25m의 48폭 병풍과 그가 5년간 일러스트로 뜨개질하듯 작업했다는 1000개의 '시각적 사유' 작업물도 만날 수 있다.

이 모두가 어디 하나 똑같은 데 없는 작품이다. 그에게 작가는 "만드는 놈도 완성됐을 때 난생 처음 본 것을 만드는 자"여서다. "이게 바로 제가 배운, 죽는 날까지 추구할 작가 정신입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것과 싸우는 것이니까요. 무슨 그림, 무슨 작품이 팔린다고 온통 그것만 만드는 사람은 카펜터(carpenter, 목수)나 테일러(tailor, 재단사)이지요. 저는 그렇게 교육 받았고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달 5일에 시작한 전시는 3월 5일까지 한달간 이어진다. 전시 공간은 문화공간 YOU(제주시 해안마을 2길 7 2층).

양기훈 작 '술 취한 나'(1986).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5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