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해의 하루를 시작하며] ‘셀프 혁명’ 늦지 않았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고나해의 하루를 시작하며] ‘셀프 혁명’ 늦지 않았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 입력 : 2024. 11.27(수) 01:3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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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50년 된 집을 고쳤다. 가만뒀더라면 무너져 내렸을 낡은 집은 부서지고 지어지는 혁명을 거치며 다시 집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것은 혁명의 과정을 통해 그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는 비단 국가나 건물 뿐만 아닌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셀프 혁명'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세계적인 명저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번역한 책에 붙여진 한국 명칭이다. 스타이넘은 힐러리 클린턴의 멘토일 정도로 여성들의 내면 세계를 확 바꿔낸 사람으로, 남자의 경우는 'Mr.' 하나만으로 표기되는데 여성은 미혼 기혼을 나누어 'Miss'와 'Mrs.'로 값 매기기를 하는 것을 꼬집으면서 '미즈(Ms.)'라는 표현을 퍼뜨리는 데에 공헌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바람에 예전에 우리나라 명동에는 '미즈백화점'이 생긴 적이 있다.

그러한 분발의 시작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로도 이어진다. 공개적으로 '나는 바보야'를 외친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선종 후 '바보의나눔' 재단도 설립돼 지금도 그의 정신은 우리 사회에 든든한 뿌리로 작동하고 있다. 그가 자신이 바보라고 용기 있게 외친 것은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69년에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된 이후의 일이었다.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저서들의 출간조차도 소유의 연장이라 하면서 무소유를 끝까지 실천한 분이 법정 스님이다. 그가 말년에 주지로 강제 보임된 길상사도 실은 스님의 법언에 감복한 전 유명 요정 OO각 주인인 김OO님이 시가 1000억원을 넘기는 그 땅과 건물을 보시한 탓이었다. 그 성의가 아름다워서 강원도의 너와집에 머물던 스님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길상사를 찾아 짧은 설법을 베풀었다. 법정이 무소유의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45세 시절인 1976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법정은 민주화운동 투사라 할 만치 천주교, 기독교와 열심히 내통한 열혈 인간이었다.

깨달음과 전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엄청 잘나갔고 지금도 잘나가는 이 시대의 정신건강 계통의 선두 주자인 이시형 박사도 그중 하나다. 80대의 그는 50대 시절에 깨달은 친자연과 몸 움직이기의 큰 의미를 깨닫고서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그걸 지금도 크게 외치고 있다.

깨달음에는 시한도 없고 격막이나 장애물도 없다. 언제든 그걸 껴안으면 삶의 지평이 달라진다. '지금 바로'가 그때다. 잡생각, 잡머리 돌리는 시간 건너뛰고 혁명하자. 예전의 자신을 혁명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대 자신뿐이다. 인생은 자신의 끊임없는 선택으로 이뤄진다. 오늘 지금도 수천 수만 개의 선택 앞에 그대는 서 있다. 오늘 뭘 먹을까에서부터 뭘 걸칠까,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고 그럴듯하게 보일까 등으로.

돌아와서 되돌아보자. 오늘 그런 선택들이 나에게 행복이었는지를. 후련히 떨어내고 나를 혁명하지 못하는 선택들은 불면증을 낳는다. 그게 쌓이면 치매로 간다. 은근히 혼자서 잘난 사람들 대부분의 종착지가 바로 그곳이다. <고나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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