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봄의 기운이 서서히 스며드는 3월에는 비로소 한 해를 다시금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운영하는 시각예술 기반의 '대안공간'은 올해로 7년 차를 맞이했다. 대안공간이란, 주류에서 담지 못하는 비주류의 예술가, 실험적인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와 함께 협업하는 공간이며 신진 및 청년 작가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많다. 공모나 섭외를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개인전을 지원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경제적으로는 거의 이익이 없는 일이고, 5년 이상 유지하기 힘든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덕분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청년 사업과 지원 제도에 관한 자문, 심의와 같은 일정이 증가한다. 지난 2월만 하더라도 도내외 공모전 심사를 맡았고, 청년 사업 연간 계획을 위한 여러 자문 회의에 참석했다. 이런 자리에서 종종 '요즘 청년 예술가는 너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대학교나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진 작가를 현장에서 마주하는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대가 가진 문화적 환경에 따라 그 시대를 겪어내는 청년들은 나름의 고충을 떠안게 된다.
물론, 내가 신진 큐레이터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현재 청년 예술가에 대한 지원 제도는 비교적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이 많다. 무급으로 인턴 시절을 보냈던 나는 신진 작가 공모전의 운영을 담당하며 처음으로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부여받았다. 그 시절, 같은 또래의 신진 작가들과 밀접하게 호흡하며 모이고 흩어지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작가로서의 성장 과정은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작가 지원 제도는 변화 과정 중에 있었고, 무엇보다 생계를 위한 직업은 별도로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함께했던 작가 중, 절반은 미술계에서 이름을 볼 수 없게 됐고 일부만이 활동하고 있으며, 다행히 몇몇은 중진에 다가설수록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예술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환경과 비율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며 그 삶을 유지하는 것은 세대를 불문하고 고단한 일이다.
이것은 청년 세대의 편안함과 안일함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문화와 사회적 제도가 과거에 비해 발전한 것은 불편함을 감내하며 목소리를 내었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정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수정해 나가고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단, 현재의 청년들을 위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봄을 함의한 청춘(靑春)이란 단어는 청년 세대를 비유하는 데 제격이다. 말 그대로 삶에서 한 단계 넓은 세상으로 움트는 여린 잎들은 단단한 뿌리와 가지를 통해 성장한다. 큐레이터로서 올해에는 조금 더 많은 가지에서 푸른 잎들이 싹트기를 희망하며 나와도 마주하기를 기대한다. 봄이 되면, 김연수 시인의 책, '청춘의 문장들'의 인상적인 글귀를 되뇌며 나와 우리 세대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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