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인도의 타지마할 주변에는 45곳의 무굴 제국 시대 유적이 함께 존재한다. 이슬람 건축의 정수로 유명한 타지마할은 유지관리가 잘 돼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유적지는 폐허에 가깝다.
폐허임에도 그곳은 지역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유적의 공간 구조에 천막을 덧대어 만들어진 시장을 누비고, 어린이들은 부서진 담장 주위에서 뛰놀며 그들만의 놀이터를 만끽한다. 심지어 가축의 배설물을 다져 만든 건축 재료로 벽을 쌓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유적지가 원형을 보존하기는 어렵지만,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며 활기를 띤다.
이곳 주민들에게 유적은 그들의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들은 현시대의 요구와 쓰임에 맞게 유적지를 점유하며, 건축물의 변형을 통해 지속하는 새로운 보존의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보존은 국가 차원의 제도에 의해 관리되는 하향식 정책에 의한 것과 구분되는,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존과 관련된 연구와 건축 작업으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라훌 메로트라(Rahul Mehrotra) 교수는 유적을 매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자고 이야기한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주민들의 일상이 깊숙이 개입하는 현상을 통해 '물질적 실체와 문화적 행위가 공존하는 방식의 보존'을 강조한다. 건축과 문화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통합된 하나의 차원에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해석함이다. 경외시하는 대상 자체를 온전하게 보호해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하며 이어가는 문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제주의 구도심 옛 마을에는 오랜 시간 축적돼 온 문화가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짧은 시간 소비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배어가는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오래된 건물을 당연하듯이 철거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과정이, 차곡차곡 쌓아 온 문화를 스스로 말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물을 신축하는 행위에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반대로 옛 건물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방법이 축적된 문화를 이어가는 유일한 대안은 아닐 것이다.
서문시장 건너편, 덕훈이용원은 지난 60여 년 동안 부러리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다. 이제 그 쓰임을 다해 방치된 공간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마을 쉼터로 바뀌는 중이다. 구조 안전성 문제로 철거될 뻔했던 옛 건물은 현행 기준에 맞게 철골로 보강하고, 벽체를 과감히 허물어 비룡못의 옛 기억과 왕벚나무 생태를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돼가고 있다.
2025년, 덕훈이용원의 옛 온기가 변화된 이곳에서 다시 불 지펴질 수 있을까. 건축물은 말없이 새로운 세대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현승훈 다랑쉬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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