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병 왕벚나무 자생지 턱밑까지 위협

빗자루병 왕벚나무 자생지 턱밑까지 위협
자생지 입구 도로변 왕벚나무 대다수 발병
곰팡이균 포자 바람타고 날아가 번질 우려
세계유산본부 현장 조사 "긴급 방제 요청"
  • 입력 : 2020. 03.30(월) 18:32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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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 감염목에서 나타난 빗자루병 증상. 꽃을 피운 가지와 달리 빨간 원안의 병든 가지에서는 작은 잎만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이상민 기자

제주시 봉개동 5·16도로변에 심어진 왕벚나무에서 빗자루병이 급속도로 확산하며 인근의 제주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9호)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29일 찾은 제주시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일대. 자생지 입구 쪽 양 도로변에 심어진 왕벚나무 대다수는 봄 기운을 비껴간 듯 꽃을 피우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간간이 꽃을 피운 왕벚나무도 발견됐지만 이마저도 제모습은 아니다. 나무의 일부 가지가 서로 뭉쳐, 꽃은 피우지 못하고 잎만 도드라지게 자라고 있다. 전형적인 빗자루병 감염 증상이다.

빗자루병은 곰팡이균의 일종인 타프리나(Taphrina)균에 의해 수령이 오래되거나 수세가 약해진 나무에서 생리적으로 나타나는 병을 말한다. 이 병에 감염되면 기형으로 돋아난 잔가지들이 빗자루처럼 쪼그라들다가 10∼20년이 지나면 말라죽는다.

빗자루병에 감염된 왕벚나무들은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돼 보호 받는 왕벚나무 두 그루와 직선거리로 불과 200~3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빗자루병의 원인균인 곰팡이 포자는 공기를 타고 날아가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지정 보호수인 왕벚나무로까지 병이 번질 우려가 있다.

 세계유산본부 공립나무병원 관계자는 "바람이 강하면 빗자루병 곰팡이 포자는 수백미터까지 날아간다"면서 "하루 빨리 감염목에 대한 방제를 시작해 왕벚나무 자생지 일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유산본부는 취재가 시작되자 30일 왕벚나무 자생지 일대에서 현장 조사를 벌여 입구 쪽 5·16도로변에 심어진 왕벚나무 상당수에서 빗자루병이 발병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제주시에 따르면 5·16도로변에는 심어진 왕벗나무들은 가로수 조경 목적으로 지난 1999년부터 심어지기 시작해, 현재 그 수가 약 270그루에 이르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다행히 빗자루병이 왕벚나무 자생지로까지 번지지는 않은 상태"라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자생지 일대는 세계유산본부가, 입구 쪽 등 도로변에 심어진 왕벚나무들은 제주시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30일) 관리주체인 시에 긴급 방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빗자루병을 방제하려면 병든 가지를 잘라내 불태우고, 자른 부위에 약제를 발라야 한다"면서 "정확히 몇그루가 감염됐는지 실태를 파악해 조속히 방제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주로 벗나무류를 중심으로 빗자루병이 발병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에는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성판악 구간에 심어진 500여그루의 왕벚나무 중 40%가 빗자루병에 감염돼 대대적인 방제가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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