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기획 / 한라산 학술 대탐사 (226회)]

[大河기획 / 한라산 학술 대탐사 (226회)]
제2부 한라대맥을 찾아서(60)
생명이 살아 숨쉬는 ‘오름 골짜기’
  • 입력 : 2004. 12.31(금)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일 앞에 보이는 군시설물이 있는 곳이 큰오름이고 셋오름과 족은오름이 그 뒤로 이어져있다. 세개의 오름이 나란히 늘어서 있어 삼형제오름이라고 부른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삼형제오름

셋오름 기슭의 지다리(오소리)굴. 아직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지다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삼형제오름 해발 천백고지의 삼형제오름은 세개의 오름이 동서로 나란히 늘어서 있어 이름붙었는데 세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오창명씨는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에서 민간에서는 세성제오름 또는 세(스 +ㅣ)오름으로 불렀다고 밝혔다. 세성제의 ‘성제’는 형제를 뜻하고 세(스 + ㅣ)오름의 ‘세(스 +ㅣ)’는 세(三)의 제주도방언이다.

 한라산 천백도로의 탐라각휴게소 옆길로부터 큰오름과 셋(샛)오름(둘째오름) 족은오름(작은오름)이 차례로 서쪽방향으로 이어진다. 큰오름 입구에서 가장 먼저 탐사단을 맞이한 건 해군제주방어사령부 세오름기지다. 이어 무덤 2기가 눈에 띈다. 오름탐사를 다니면서 제법 풍수를 익힌 탐사단원들이 ‘안산과 주산이 기가 막힌 곳’이라며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고 감탄을 한다. 무덤이나 군기지나 명당에 자리잡기는 매한가지다.

 큰오름은 표고 1,143m로 세오름 중 키가 가장 크지만 면적은 367,384㎡로 셋오름보다 조금 작고 족은오름보다 조금 크다. 오름 동쪽 기슭에는 지난 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제주출신의 산악인 고(故) 고상돈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지난 80년도에 서울제주도민회산악회가 세운 기념비의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썼다. “보라… 한국 산악사에 화려한 그 이름.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 이 산악의 영웅.” 고상돈은 79년 북미 최고봉인 메킨리봉을 등정한 후 하산하던 길에 목숨을 잃었다.

 큰오름에 이어 표고 1,113m 면적 412,642㎡의 셋오름으로 올랐다. 제주말 ‘새 또는 세’는 사이나 둘째를 뜻하는 것으로 세개의 오름 중 둘째오름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제주에서는 삼형제일 경우에는 큰아들 셋아들, 족은아들이라 불렀으며, 사형제는 셋째를 말젯아들이라 했다. 오형제는 말젯아들을 큰말젯아들과 족은말젯아들이라고 명확히 구분했으며, 육형제의 경우는 제주도 각 지역마다 셋아들이나 말젯아들을 큰셋과 족은셋, 족은족은셋 또는 큰말젯과 족은말젯, 족은족은말젯하는 식으로 구분해 다르게 불렀다.

 셋오름 능성에는 조릿대가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고정군 탐사위원(한라산연구소)은 멸강나방이라는 돌발해충이 잎을 갉아먹은 것이라고 한다. 조릿대가 한라산 생태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지 오래여서 반가운 일인 줄 알았는데 잎이 말라버린 뒤에는 오히려 순이 1.5배 더 자라 왕성하게 번식한다고 한다.

 삼형제오름은 한라산 깊은 골짜기에 있어 숲이 울창하고 동물들의 서식처로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아직 겨울잠에 들지 않은 지다리(오소리)의 흔적이 여러곳에서 발견됐다. 능선 한 자락에서 지다리 굴이 발견됐는데 그물 모양으로 여러개의 작은 굴이 서로 연결돼 눈으로 확인된 것만 수십여개에 이른다. 요즘 한방과 민간치료 요법 식용으로 수요가 늘어 지다리 한 마리에 80만원 이상을 호가해 밀렵이 늘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환경부는 지난 8월 ‘야생동식물 보호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 2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 중에는 오소리를 포함해 모두 95종이 먹는 자 처벌대상 동물로 지정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이미 멸종위기에 이르러서야 보호법을 만들어 늦은 감이 들지만 인간이 저지른 일을 인간이 해결하는 게 인간사다.

 셋오름 정상에 오르니 광활한 제주도 남서쪽 땅과 오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루고 멀리 희미하게 산방산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가시덤불을 헤치며 표고 1,075m 면적 340,627㎡의 족은오름으로 올랐다. 정상에 올랐더니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제껴 서있기조차 힘이 든다. 전문산악인 오문필 탐사위원의 제안으로 남쪽능선으로 몇걸음만 내려오니 언제 바람이 불었느냐는 듯이 고즈넉하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쬔다. 능선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면서 되새겨본다. 오름에 오를 때는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고생도 덜하게 된다’는 걸.

 족은오름 북녘 자락의 골짜기는 남∼서∼남으로 흘러 안덕계곡으로 들어가는 창고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삼형제오름의 주요식생은 때죽나무와 꽝꽝나무, 물푸레나무, 산딸나무, 헛개나무 등 다양한 자연림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리포트]숨겨진 자연자원, 숨은 물 벵듸

 한라산의 전형적인 낙엽활엽수림으로 이루어진 삼형제오름, 일부의 삼나무 조림지와 낙엽활엽수림이 혼효된 형태의 식생을 지닌 노로오름과 살핀오름. 이 오름들 중앙에는 속칭 숨은 물 벵듸(또는 오작지왓) 즉, 물이 숨어있는 넓은 들이나 벌판이라 표현되는 습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얼핏 보면 초원으로 보이지만, 그 초원을 걷다보면 왜 이곳이 숨은 물 벵듸라고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연중 물이 수풀 속에 숨겨져 있는 비교적 고산에 위치한 습지이며, 규모도 1100고지 등 다른 고산습지와 비교할 만하다.

 또한 이 벵듸일대는 주변 오름들에 둘러싸여 분지형의 위요경관(enclosed landscape)을 지니고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며, 국립공원의 외부 지역 중 겨울철 눈자원이 가장 풍부하며 장기간 보존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1997년에 제주도에서는 50만평 규모의 벵듸 동계스포츠지구 시설을 구상하기도 했던 곳이다.

 아직까지 이 벵듸일대에 대한 동·식물 등의 조사결과는 보고된 바 없다. 이번 탐사에서도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다양한 식물상을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1100고지 습지와 유사한 식생구조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들 지역은 미세한 지형적 위치에 따라 다소 다른 식생을 보이고 있는데 좀개수염, 좀괭이수염, 올챙이고랭이, 도깨비사초, 누운기장대풀 등이 주요 우점종으로 구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비교적 장기적으로 물이 보유되는 지역에는 좀개수염-좀괭이수염군락, 올챙이고랭이군락, 도깨비사초-기장대풀군락이 발달된 반면 습지 내에서 상대적으로 빨리 건조되는 지역에는 잔디군락이나 누운기장대풀군락이 발달된 것으로 보인다.

 습지 주변부에는 일부의 서어나무류와 참나무류로 구성된 낙엽활엽수림을 제외하고 대부분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는데, 이는 과거 조림지가 대부분 초지로 구성되었던 곳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비록 정밀한 자연자원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이 벵듸일대는 생태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숨겨진 고산습지라 할 수 있다.

<고정군 탐사위원(한라산연구소/식생분야)>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69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