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면 가족 곁으로 돌아오나" 눈시울 붉히는 4·3 유족들

"언제면 가족 곁으로 돌아오나" 눈시울 붉히는 4·3 유족들
어릴적 집 나간 아버지 정뜨르비행장서 희생
4·3사건, 홍 씨 가족 삶 한 순간에 무너뜨려
유가족들 행방불명 표석 앞서 하염없이 눈물
  • 입력 : 2025. 04.03(목) 11:12  수정 : 2025. 04. 03(목) 17:05
  • 김채현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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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4.3행불인 희생자 표석 앞에서 김인근 어르신이 가족 비석을 닦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한라일보] "아버지 유해도 못찾았으니. 가슴이 미어지지 미어져. 얼굴이라도 기억났으면 좋겠는데."

4일 제77회 4·3추념식이 거행된 제주4·3평화공원에는 4·3희생자 유가족과 제주도민 등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통한의 역사를 되새겼다.

추념식 현장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특히 행불인표석 앞에서는 4·3당시 아버지와 언니, 새언니, 조카들까지 숨진 아픔을 가지고 있는 김인근(91) 씨와 3대에 걸친 그의 가족들이 함께 참배하며 아직 아물지 않은 4·3의 상처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날 행불인표석 앞에서 만난 고복자(85)씨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시 동회천이 고향이라는 그는 8살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다. 어릴적 집을 나간 뒤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관련 문서를 통해 본인의 마지막 행적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그의 마지막 행적은 정뜨르비행장. 아버지가 4·3 때 희생됐을 수도 있다고 어림짐작만 하던 딸은 그제서야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고 씨는 "정뜨르비행장에서 희생당했다고 기록에는 나와있는데 유해를 아직까지도 못찾았다. 그놈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바닷물에 던진 것은 아닌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머니가 갓난쟁이였던 동생을 먹이려고 쓴 죽을 보고 폭도 간식거리를 준비했다며 경찰들이 집에 불을 질렀던 그날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면서 "첫째였던 나에게 '동생 잘 보고 있으라'면서 밭에 나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기억하는데 하도 세월이 흘러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당시 집이 불타면서 사진이고 뭐고 남은게 없으니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고 씨는 혼란스러운 정국에 속상함을 토로하면서도 "아버지를 포함해 4·3당시 희생됐던 모든 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이제 그 당시를 기억하는 가족들도 나이가 많이 들어간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시아버지 '홍순화'씨를 비롯한 홍 씨 3형제의 비석을 닦으며 준비해온 음식과 술로 절을 올린 전부자(83)씨는 4·3사건이 한 가족의 삶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고 말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전 씨는 "홍 씨 3형제 모두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희생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편과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시아버지가 꿈에 나오셨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나는 이곳에 잘 있다'고 말하시는데 아마 유해를 못찾아 슬픔에 잠긴 가족들에게 '나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들 행적을 찾아 남편이 해마다 나와 함께 대전을 방문했다"면서 "그렇게도 아버지를 찾고 싶어했던 남편은 5년 전에 (아버지)곁으로 갔다. 홍 씨 3형제는 언제쯤 남아있는 가족 곁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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