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7)서귀포시 법환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7)서귀포시 법환마을
  • 입력 : 2024. 06.28(금) 01:00  수정 : 2024. 06. 30(일) 14:17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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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너울파도가 인상적인 마을이다. 멀리 태평양에서 큰 바람이 일면 그 파장을 읽어 동심원을 그리며 달려온 너울이다. 남풍이 부는 날에 앞바르와 오다리 부근 갯바위에서 수평선에 소실점을 찍으면 너울파도를 타고 범섬이 마치 큰배처럼 출렁거린다. 범섬이 있어 법환리는 오묘한 공간적 유대감이 일어난다. 보름달이라도 휘영청 밝은 날이면 절묘한 바다의 울림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한 범섬.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6호 '범섬 상록활엽수 및 흑비둘기 번식지'로 지정된 곳이다.

목호들이 최영장군의 군대에 쫓겨서 사생결단을 낼 장소로 범섬을 선택한 것은 절벽이 마치 철옹성처럼 오르기 힘들 것이라 여겼을 법도 하다. 법환포구에 남아있는 '막숙'이라는 지명은 최영의 군대가 천막을 치고 군영을 형성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치열했던 싸움을 법환리는 지명으로 기록해두고 있는 것이다. 목호의 난이라고 하는 역사에 대하여 그 평가는 학자들의 몫이라 치더라도 최영장군이라고 하는 맹장이 여기에서 범섬에 있던 목호들과 싸웠던 사실은 이 마을을 더욱 유서 깊게 한다.

세추맥이, 빽빽동산, 써을, 고래왓, 두루머니물, 너벅빌레, 망다리, 칭계왓, 도리술, 왕개니안통, 공물깍먼여 등 제주어 감각을 총동원 하지 아니하고선 뉘앙스도 전달되지 않을 마을 지명들을 소리 내어 부르노라면 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의 참 맛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도 큰 마을이지만 과거에도 다른 마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았다. 불과 110년 전에 인구 상황을 조사한 삼군호구가간총책이라는 자료를 보면 317호에 1332명이 살았다고 한다. 대촌이라고 해야 옳다. 마을 면적으로 볼 때, 밀집된 형태의 취락이 형성되었던 곳. 그만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연적, 사회적 여건이 풍성했다는 것이다. 농경과 어로가 균형 잡힌 생활공간이었음을 마을의 위치와 지형들을 살피다보면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자녀들이 학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에 선비마을의 면모와 조상 대대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를 인용하지 아니하고서라도 마을 분위기가 주는 모범적 사례들을 본받고자 하는 후학들의 자세는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유전적 자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을 포구와 해안도로를 걸으며 듣는 파도소리는 조간대가 얼마나 풍성하게 발달되어 있는 지 가늠하게 한다. 마치 바다밭을 연상할 정도로 해산물들이 숨어 있을 갯바위와 굵은 바닷돌들. 기근이 들어도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해답이 저 조간대에 있었으리니. 바닷속 또한 풍요의 극치라고 한다.

현창호 마을회장

현창호 마을회장에게 법환마을이 보유한 가장 큰 자부심을 묻자 너무 실질적인 대답이 나왔다. "해녀학교입니다." 해산물이 풍성해서 조상 대대로 해녀들이 많았다. 그러한 전통과 해양환경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2006년 문화관광부에서 '좀녀마을'로 지정되었다. 제주의 수많은 바닷가 마을들이 있음에도 법환리가 그러한 특별한 존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해녀들의 투철한 자부심과 전승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해녀문화의 미래에 대한 도전적 자세로 추진해온 해녀학교는 세계무대에서 제주인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도민적 자산이다. 이를 위해 20년 넘게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 온 어촌계와 해녀 선생님들에 대하여 필설로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부족하다. 문화적 가치에 걸맞은 예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인 것.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에서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의 시각으로 중앙정부와 이 해녀학교를 위한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계획이 나와 있어야 한다. 법환마을이라고 하는 행정단위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바라볼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마을의 외형은 도농복합지역의 면모로 급속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지속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법환마을이 보유한 역사성과 자긍심들이 오롯이 후세들에게 전승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져야 한다. 귀한 것은 귀한 값을 하니까. <시각예술가>

점방의 추억
<수채화 79cm×35cm>

마을 안길 나지막한 경사를 오르다가 만난 정겨움과 아련함. 초가지붕의 형태를 차광망 같은 것으로 감싸고 있으되 본래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은 그대로 간직한 모습에 격한 감정이 밀려왔다. 중요한 것은 상점의 역할을 했던 집이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담배를 파는 곳이었음을 알려주는 함석간판이 그대로 있느니 눈치로 알아차린 것이다. 길가에 놓여진 평상은 오후가 되어 집그늘이 지면 동네 어르신들이 오르막을 오르다가 잠시 쉬어 상점 주인과 도란도란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 같고. 이방인들은 저 상점 이름을 모르겠지만 마을에서 수 십 년을 살아왔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어찌 생각하면 마을공동체의 짜릿한 상징이라 여겨져서 그렸다. 참으로 그릴 것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마을이미지가 있음에도 유독 이 옛 점방을 그리게 된 것은 정감어린 추억 때문. 담채화 느낌을 살려야 오래된 이끼를 그릴 수 있기에 건물 벽 아래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들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독특한 이미지를 잡아낼 수 있어서다. 상점출입문은 당시에 최신식 샷시문으로 해서 앞서가는 유행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유리창문은 검소하게 나무문을 유지하였지만 페인트칠은 빨간색을 선택하여 시선을 끌도록 한 감각이 미소짓게 한다.

파격적인 구도를 지닌 주제 중심의 그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잊혀져가는 어떤 소중한 과거에 대한 그리움. 수채화가 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낡은 것도 상큼하게 와닿게 할 수 있다는 사실.



해질 무렵 범섬의 향기
<수채화 79cm×35cm>

그냥 지나가며 바라보는 범섬과 그림으로 그리려 달려들어 그리는 범섬은 달랐다. 오묘함이란 이런 것. 쉬울 것 같은 외형이지만 절벽에 반사된 광선들이며 덮여있는 나무들의 끊임없는 명암의 연결들. 하지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오후 여섯시가 넘은 시간, 하루 종일 흐른 날씨에 비도 오락가락 하다가 저녁이 돼서야 연극조명 스포트라이트처럼 주연배우를 비추니 스케치에 들어갔다. 동양화 기법의 요소를 6B연필에 담아서 고전적인 맛을 바탕으로 하고 명암법이 가지는 특징으로 격조를 발생시키려 하였다.

장마철에 느껴지는 회색 구름의 은은함을 공간적 배경으로 범섬을 그렸다. 절벽이 주는 독특함은 광선과의 만남에 있어서 하나의 환상이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 저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그리는 것은 이 섬에서 숱한 고난과 함께 살아온 선조들의 정신을 그리는 것이라 과도한 해석을 낳게 하였으니, 그리면서 치미는 망상을 부질없다 할 것인가? 범섬은 부모와 자식 관계다. 서쪽에 자녀를 두고 항시 걱정을 놓지 못하는 부모. 어여쁘기도 하거니와 보듬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형상이다.

파도가 늘 짠물을 주입하는 하단이 검정색에 가까운 짙음으로 바다에 떠 있는 배를 연상시킨다. 사방이 절벽으로 이뤄진 독특한 섬을 그리면서 숱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두운 밤에 고깃배들에 서치라이트를 달아 벽에 비추는 축제 이벤트를 하면 참으로 환타지를 폭발시키는 섬이 되겠다는 환쟁이의 상상이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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