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 젊은 여성이 갑작스럽게 시력이 낮아졌다고 외래에 방문했다. 검사를 해보니 이전 안경보다 근시 도수가 많이 올라가 버렸다. 젊은 성인의 근시 도수가 단기간 크게 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 환자에게 물었다. “혹시 다이어트 약 드세요?”
이번 칼럼에서는 미용 목적이라는 이유로 의약품으로써의 위험성이 다소 경시되는 다이어트 약물의 안과적 영향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펜터민'은 1950년대부터 사용된 대표적인 식욕억제제로 흔히 나비약이라 불린다. 이 약물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몸에 긴장감을 주고 식욕을 감소시키지만, 동공 확장과 안압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폐쇄각 녹내장이 있는 환자는 실명 가능성도 있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간질, 편두통약으로 쓰이던 토피라메이트도 다이어트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토피라메이트는 섬모체 부종을 유발해 눈의 초점을 맞추는 수정체 구조가 전체적으로 앞으로 쏠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까운 것만 잘 보이는 급성 근시가 발생하거나 안압이 높아지는 급성 폐쇄각 녹내장 위험성이 높아진다.
오르리스타트는 지방 흡수를 억제하며 대표 상품으로 제니칼이 있다. 장 내 지방분해 효소를 차단해 아예 지방의 체내 흡수를 막고 그대로 배출시켜 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지용성 비타민(A·D·E·K)의 흡수도 함께 차단된다. 특히 비타민 A가 부족할 시 야맹증과 안구건조증이 생길 수 있어 오르리스타트를 장기간 복용한다면 비타민 A를 따로 보충해야 한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최근 다이어트 약으로 더 각광받는 GLP-1 수용체 작용제도 일부 연구에서는 안과적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위고비'라는 상품명으로 널리 알려진 세마글루타이드는 혈당이 급격히 조절될 경우 기존의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일시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같은 계열인 리라글루타이드 기반의 상품 '삭센다' 역시 유사한 작용을 하므로 위험성이 있다. 드물지만 수정체 굴절률 변화로 인한 시력 저하, 안구 통증과 불편감, 황반부종, 허혈성 시신경병증의 위험성도 있다.
한약도 예외가 아니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사용하는 마황은 에페드린 성분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신진대사를 증가시키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인다. 이때 에페드린은 혈압을 높이고 동공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안압을 높여 녹내장 환자들에게 특히 위험하다. 또 모양체 근육의 조절 기능에 영향을 줘 일시적인 근시를 유발하며 장기간 사용 시 안구건조증이 심해진다.
다이어트는 병이 아니지만 다이어트 약은 약이다. 다이어트 약물은 단순한 체중 감량 효과를 넘어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어떤 약을 쓰든 안구건조, 야간 시력 저하, 눈부심 등의 불편함부터 심하게는 영구적 시각 손실까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다이어트 약물은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전문의와 상의해 복용해야 한다. <김연덕 제주성모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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