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빼앗긴 정신에도 봄은 오는가

[신윤경의 건강&생활] 빼앗긴 정신에도 봄은 오는가
  • 입력 : 2024. 06.26(수) 01:30  수정 : 2024. 06. 26(수) 12:33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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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병원을 찾는 어린이 대다수와 청소년 및 청년의 상당수가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의심하며 진료실에 들어온다.

요즘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나 학원을 가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이나 유튜브, 인터넷 사용으로 보내고, 궁금한 것은 chat GPT (대표적인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등을 활용한 온라인 검색으로 해결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게임과 인터넷상의 짧은 영상물들은 빠른 전개, 높은 몰입도, 쉬운 쾌락적 흥분으로 중독성이 매우 높다. 이런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타인과 길게 대화를 나누거나 자연을 관찰하거나 책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못한다. 점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스마트폰 없이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 대다수가 ADHD가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정신작용에는 이미지화와 상징화라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우리 뇌의 이미지화 능력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상징화는 태초에는 몸짓이다가 점차 언어와 숫자로도 확대된 능력이다. 현대인은 이미지화의 압도적 우세와 상징화의 열세로 정신작용의 심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접속과 차단이 자유로운 세상에는 익숙하나, 자신과 타인의 욕구가 상호조절되어 갈등이 완화되는 경험은 거의 하지 못한다. 이렇듯 감각적인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빠르고 쉽게 얻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현실의 느린 속도와 좌절에는 분통이 터지고, 그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이 없다. 문해력과 공감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쉽게 해결되는 호기심은 지식으로 쌓이지 못하고, 애정 어린 관심 없이는 지혜에 이르지 못하므로.

많은 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며, 아이들이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공부란 무엇인가? 호기심과 관심이 유지되는 상태이다. 거대하고 모호한 세계와 지식의 우주에 압도되지 않고 쉽게 포기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으며 항해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집 앞에 자라난 풀잎에 대해, 반려동물에 대해, 쌀의 조리법에 대해, 인스타그램의 코딩에 대해, 은하수에 대해 혹은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자기에 대해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탐색을 계속하는 것이 공부이다. 그러니 관계성과 애정 없이는 앎도 없다. 앎은 생각이 아니라 시공간 속 나와 상대 사이의 전신 체험이기 때문이다.

아쉽고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다가가고 싶은, 알고 싶은 마음에 머물러, 헤매고 깎이고 섞이고 다져지는 경험 없이 가볍게 스쳐 가는 것들은 기억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 깊고 강한 기억이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점점 뜨거워지는 이 여름, 45억 년 넘도록 매일 떠오르는 해와 달을, 40억년 동안 계속해서 일렁이고 있는 바다를, 수 천만 년의 시간을 거쳐 나무와 꽃과 우리를 먹여 살리는 발밑 땅과 모래를 수시로 만나자. 누군가를 그리워하자. 그것이 삶과 공부의 시작이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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