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시조·소설 심사평

[2018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시조·소설 심사평
  • 입력 : 2018. 01.01(월) 18: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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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사평] 할 말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움

예심을 통과한 열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본선에 부쳐진 38편의 작품 대부분이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시적 이미지들이 거느린 확장성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도 자세히 살피며 여러 차례 읽었다. 그 결과 본심에 오른 대부분 작품에서 시의 형식적인 면 즉, 연 나누기에서 많은 약점이 드러났다. 과도하게 연을 나눔으로써 시의 이미지들이 파편화되어 새로운 시적 의미로 확장되는 것을 방해한 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 나누기는 단지 화제나 의미의 단위로만 끝나지 않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시적 이미지들을 서로 작용시켜 복합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시적 의미를 확장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품에 담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없어도 될 사족들이 많았다.

비교적 이러한 약점들을 극복한 이온정, 지관순, 조직형 등 세 분의 작품들을 두고 다시 심사에 들어갔다. 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에 세 분 모두 재능이 있었다. 먼저 이온정의 '염소와 제천역'에 주목했다. '염소와 역'이라는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이 세밀했고, 사유가 깊었다. 하지만 정작 시적 대상을 빌어 드러내야 할 '남도의 말씨'나 '톤이 익숙한 목소리'에 대한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관순의 '저 희고 긴 새장'은 투고한 작품 중에서 가장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셔츠 소매'라는 시적 대상을 통하여 무리 없이 시의 외연을 확장해 나갔지만, 마지막 연이 문제로 지적됐다. 앞선 사고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조직형의 '폐선'에서 선자들은 공통으로 시를 이끌어 나가는 진술의 힘에 주목했다. 현란한 언어의 기교가 아닌 자신이 할 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였다. 시적 진술이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는 오랜 사유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신뢰감을 주었다. 투고된 네 편의 작품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면도 영향을 주었다.

[시조 심사평] 나열 수준 뛰어넘는 고차원적 전개 기법

모름지기 예술작품이란 제목을 설명하는 주관식 모범답안지가 아니라는 전제로, 시조 초중종장의 유기적 관계, 내용의 접근방법 등에 초점을 두고 심사에 임하였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중, 박혜순의 '날고 싶은 잠자리'는 일종의 간병일지로, 병실에 날아 들어온 잠자리의 거동의 기록이다. 작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 돋보였으나, 전체적인 산만함과 내용의 나열수준에 머물렀다. 김순국의 '해녀콩꽃'은 참신한 소제와 시어선택이 남달랐지만, 약간의 작위적이라는 측면에서, 김월수의 '백탄의 시간'은 한 편의 작품에 땔감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담아내려는 했다. 그러나 제목에 대한 관념적 설명과 요란한 낱말들이 되레 감점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응모작품 대부분이 시조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서정성과 미학적형상화가 미약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와중에 박미소의 '망초꽃 사설'이 차분한 목소리로 심사위원 눈길을 멈춰 세운다. 초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거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는 망초꽃이 오늘은 시인의 모습으로 심사위원 책상 위에 올라와 하얗게 웃고 있지 않는가. 시력, 어휘력은 물론, 나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고차원적 전개 기법을 펼쳐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오랜 발효와 조탁의 과정을 거쳤음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끝수 종장에 망초꽃을 점자(點字)로 환치시키면서 엄마와 관련된 슬픔을 시조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시조만이 지니는 '결'과 음악성을 접할 수 있었던 점도 덧붙인다. 결국 심사위원 두 사람은 박미소의 '망초꽃 사설'에 당선의 꽃다발을 안겨드리기로 했다.

이참에 수상자는 물론 응모자 모든 분께 시조의 근육질 갖추기와 과감한 '밖으로의 눈뜸'을 주문하고 싶다. 시조를 마치 언어의 구슬치기로 착각하면서, 작품의 질적 하향평준화에 안주하려는 시조문단 일부의 이완된 모습들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분발을 바란다.

[소설 심사평] 이야기·사건·인물 생동감 있게 끌고 나가

총 177편의 응모작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남은 작품은 '눈 뜨는 봄', '문수리 한의원', '빵의 기원', '사십사 계단',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숨은 지도', '싸워드립니닷컴', '옛날 통닭' 등 여덟 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편을 놓고 논의한 끝에 '사십사 계단'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옛날 통닭'은 작가의 사회의식과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는 문학적 상상력에 주목했지만 정제되지 못한 이야기의 구조적 단조로움이 결정적 단점으로 지적됐다. '숨은 지도'는 짜임새 있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 '방귀 사건'과 부회장을 통한 기발한 발상이 참신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초점을 잃고 작위적, 상투적인 이야기로 흘렀다.

'사십사 계단'은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 '샛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꿈꾸는 청춘의 방황과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내 고향에서의 '지옥의 시간', 사랑과 임신, 미혼모들의 쉼터인 마리의 집, 그리고 L시 중앙시장 끝자락의 '사십사 계단'과 사사파 아이들, '모피 비너스'에서의 생활과 들고양이인 '까망이', 순대국밥 할머니의 죽음과 경찰의 사사파 추방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사십사 계단'은, 어른들은 '우범지역'인 "재수 없는 곳"으로 치부하지만, '버림받은 개'와 같은 '사사파' 아이들에게는 "이 '사막 같은 지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 계단을 폐쇄하기 위해 급습한 경찰을 향해서 '여긴 우리 영토야.' 하고 절규한다. 어른들은 그들을 "개과천선의 대상", '쓰레기 같은' 아이들, 풍기문란의 주범으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주인공 '나'와 성호, 영철 등 사사파 아이들은 '생각보다 따뜻한' 친구들이다. 특히 '나'와 성호가 '사십사 계단'과 계단 꼭대기의 공터, '모피 비너스', 바이킹, 영화관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적처럼 과감하게 서로의 입술"을 훔치듯 하는 사랑의 몸짓은 예사롭지 않은,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잠금장치라 하겠다.

'사십사 계단'은 작품을 구성하는 이야기, 사건과 구조적 장치, 인물이 논리적 질서를 이루며 현장감, 생동감 있게 끌고나가는 힘이 있다. 간결한 문체와 감칠맛 나는 묘사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했다. 앞날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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