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봉]탐라국호 폐지 900주년을 상기한다

[삼각봉]탐라국호 폐지 900주년을 상기한다
  • 입력 : 2005. 09.29(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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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제주도의 연혁으로만 보자면 탐라국호가 폐지된 지 꼭 9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상고시대에 발원하여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할거하던 시대에는 바로 그 ‘육지’의 국가들과 어깨를 겨루었음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다 한 마디씩 하는 탐라국에 대한 역사인식이다. 사실 탐라국은 기반이 탄탄한 해양국가로서 주변국을 대상으로 외교를 활발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 등을 통한 경제 활동도 다부지게 했을 정황이 이제 와서 발굴되는 여러 사료로 증명되고 있는 바이다. 이를 증거라도 하듯 탐라국이 사라진지 훨씬 이후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타난 제주관련 사료를 보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바닷길을 가장 탁월하게 개척하고 이용하던 제주민 즉, 탐라국민이었던듯 싶다.

 삼국시대 이래로 수 많은 정치외교상의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위태위태하게 독립국을 유지하던 그 탐라국이 고려태조 21년 서기938년에 태자 고말로가 고려조정에 입조한 후 고려숙종10년 즉 1105년에 이르면 기어이 탐라국호를 폐지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 나라가 또 한 나라의 힘에 밀려나 자리매김된 게 겨우 일개 지역에 불과한 탐라군으로 강등되고 말았던 소위 제주의 역사를 두고 딱히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그 이후 잠시 제주민을 위무하기 위하여 또 원나라와의 정치적인 이해 때문에 1275년 고려충열왕 원년에는 탐라국으로 잠시 회복된 적도 있다고 기록은 항변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충열왕 20년에 탐라국은 완전히 고려로 환속되고 탐라군 시대에 ‘제주’로 개편했던 시절을 상기해내 그 때로 환원시킨 게 바로 ‘제주도’의 시원이다.

 역사는 매우 역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하게도 무심한 시간 위를 굴러가며 생성, 소멸을 거듭한다고들 하지만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라는 신생 도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올해가 바로 옛 영화를 누리던 탐라국이 사라진 지 꼭 900년째 되는 해라니, 윤회는 삼라만상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역사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어떤 장애물에도 거침없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강에 얹혀 역사란 그저 어느 시점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하기 위한 흔적으로나 존재하고 있음이 당연지사라 여겨진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로 거듭 낳아지려는 제주도를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역사의 소명 앞에서는 온갖 논리와 논거는 힘을 잃는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탐라국 폐망 900년의 소회와 제주특별자치도 원년의 환희는 겹쳐질 수 있을까? 겹침의 절대미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집합공식이 제주섬에 작용되는 역사상의 사라짐과 태어남의 행간에 깊게 패인 말없음표로서 그 패러다임을 품을 수 있을까?

 역사는 제 역할을 함에 소홀함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의식이기도 하여 광막한 시간의 흔적으로나 존재하면서도 오늘에 옛날을 반추하여 현재의 삶을 추스르게 하는 일면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제주섬에도 국제자유도시가 되었건 특별자치도가 되었건 그러한 가름에는 상관없이 사람이 살아온 품새를 잊지 못하고 전통문화예술행사가 해마다 거듭되고 있다.

 며칠 후면 탐라문화제가 제주섬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판에 등장하는 신명나는 ‘거리들’도 잃어버린 탐라국의 자취들, 900년 전의 시간의 흔적과 통교함을 뜻한다. 그러한 일련의 행위들이 소위 역사를 인식하는 제주민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고 치더라도 탐라국민과 제주특별자치도민과의 시간을 뛰어넘는 공감대가 유지될 지는 의문이다. 단지 이미 독립국으로서 자치를 누려본 경험이 우리 제주사람의 게놈 지도에 아로새겨져 있는 터, 신생 도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청량하게 첫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날 수 있을지는 제주도만의 바람이라고 치자. 도민의 정체성과 합일, 시간의 공유와 역사 인식에 대한 공감, 정치이기주의가 야기한 도민정서의 분열이 하루아침에 봉합되거나 치유되지 않음도 다 아는 터, 무엇 하나 자명하게 가시적인 것이 없다쳐도 탐라국이 우뚝 섰던 제주섬에 제주특별자치도가 계명성을 앞세워 신생도로 태어나려 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랬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그 날로부터 900년이 되는 2005년의 가을에 아무도 인지하지 않은 탐라국 폐국을 상기함은 매우 쓸쓸하고 적막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명백한 진리를 잠시 우리는 잊었던 것이다.

<한림화/작가·제주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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