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제주를 비추는 문화

[이나연의 문화광장] 제주를 비추는 문화
  • 입력 : 2021. 02.09(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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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정치는 그 자체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가 <자조론>에서 쓴 문장이다. 이 문장을 고스란히 한 지역의 문화에 빗대본다. 한 지역의 문화는, 혹은 문화기관이나 행사는 그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영일 뿐이라고. 애초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에 적극적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을,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이 문장은 점점 흥미로워진다. 의견을 반영하는 일엔 불협화음이 따른다. 세상엔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은 각각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생각의 수만큼 많은 의견과 이견이 있고, 이걸 한 방향으로 모으는 일이란 때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한 시각과 생각 중에서 참신하고 새로운 것만을 모아 제시하는 일이 미술의 역할이자 전시의 기능 아닌가. 뜻밖의 시선, 새로운 시각을 세상에 보여주는 일, 이런 새로움도 있다고 세상을 설득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동시대의 시각을 보여주는 미술, 즉 동시대미술을 아울러 보여주는 문화행사 중에서 가장 그 도시를 잘 반영한 행사는 독일의 뮌스터라는 작은 교육도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행사의 시작은 사실 뮌스터 시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공공미술로 설치된 현대미술 조각품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에 응답하며 당시 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의 책임자 클라우스 부스만은 현대미술의 이해를 위한 강연을 펼친다. 부가적으로 현대미술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각 전시도 제안한다. 이 조각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작가들은 뮌스터의 문화, 역사, 장소, 지형, 자연 등을 연구해 도시 특성과 작가 특유의 시선을 가미한 작품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비용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하는 아이디어도 있지만, 구현된 작품들은 도시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때때로 영구설치되어 뮌스터시의 상징이 된다. 1977년도에 시작해 십 년에 한 번씩 개최되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미술행사가 된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이야기다. 약 4달간 뮌스터시 전역의 야외 및 공공 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보러 전세계에서 방문객이 모여든다. 상주인구의 두 배 가량 되는 방문객(67만 명 가량)이 행사기간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도시를 걷는다. 5회에 걸쳐 50여 년간 진행된 이 행사의 디렉터는 내내 루트비히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카스퍼 쾨니히였다. 그때의 혈기왕성한 디렉터도 이제 행사의 연륜만큼 나이가 들었다. 2027년에 열려야 하는 행사의 개최여부는 그 구심점이 약해짐에 따라 불투명해졌다. 생성과 소멸이 가장 선명한 행사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행사기간 늘어나는 도시의 부가수익을 노린 이들이 뮌스터프로젝트를 5년에 한 번 개최하자고 했을 때 쾨니히가 한 답변은 "십 년이란 첫 프로젝트를 끝낸 뒤 다음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겨난 주기"라는 것이었다. 뮌스터시의 "가장 매력적인 시간 단위"가 10년이었다면, 제주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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