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실칼럼]③먹고·걷고·기도하고·사랑하라

[고경실칼럼]③먹고·걷고·기도하고·사랑하라
인문학에 길을 묻다[3]
  • 입력 : 2015. 06.22(월) 16:51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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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먹고·걷고·기도하고·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2006년에 쓴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작품에서 필자는 '걷고'라는 단어 하나를 추가했다. 이 작품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남부러울 것 없는 부와 명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의 이혼과 두 번째 남자 친구와의 짧은 만남 이후 오는 무기력증과 우울증 등으로 불행 속에 허덕이던 중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행복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화려한 로마의 문화를 체험하고 파스타 그리고 피자와 같은 달콤한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의 절제라는 굴레를 벗어나 영혼의 풍요함을 찾아내는 기회를 얻었다. 두 번째 인도에서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인식과 불행의 시작점을 찾아본다. 끝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인도주술사 '그뜨'와 재회하면서 우주의 건강한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치료법으로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을 즐긴다.

 행복이란 내가 쟁취하려고해서 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시작점에서 들여다볼 때 가정도 삶도 남편도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혼란스럽고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삶이 행복을 중심으로 치유되어가는 이야기들이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할 때 의의가 있는 것

 우리의 삶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중 대다수는 청소년과 청년시절의 교육과정을 거친 이후 다양한 직업을 갖고 치열하게 개척자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의 과정이라는 용광로 속에는 무수한 경쟁과 그에 따른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엉켜 있고 이는 마치 앞만 보며 위기와 스릴의 균형을 맞춰가는 외줄타기와 같게 느껴진다. 지금도 끊임없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부들인 경우 그런 목표지점들이 사라져버린 끝자락 가까이에서 더없이 공허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 홀로 시골의 숲길을 걸어가노라면 지난 삶의 여정이 파노라마같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서 엘리자베스 길버트란 저널리스트의 삶의 무대가 필자의 생각 속에 오버랩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삶, 절제와 이성적인 삶으로 하여금 나를 짓눌렀던 일상에서 탈출하여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또 수많은 음식 중에서 왜 이 음식이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집 밥을 먹으면서 곰곰이 느껴보노라면 느껴질 것이다. 음식을 마련하는 남편이 또는 아내가 아주 즐거운 미소를 지으면서 행복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을 말이다.

 요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온통 웰빙음식 프로가 많다. 송○○ 배우가 삼둥이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TV를 보고 있는 나도 군침이 돈다. '음식 속에 행복의 길은 여기에 있는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필자는 고소한 맛 속으로 침잠해본다. 현재의 일상이 우울하다면 맛 집을 찾아서 임금님처럼 맛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살고 싶다면 걸야야 한다. 하지만 그냥 걸어서 안된다

 다음은 걸어야한다는 것이다. 살고 싶다면 걸어야한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주머니를 키우면서 걸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이나 성인, 우리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 장군까지 걷는 과정에서 진리를 채득했다. 청량한 바람소리, 아름다운 새소리, 울림소리, 밀림에서 소근 대는 나무들의 이야기며 땅속에 있는 곤충들까지도 나와 소통하는 기회로 삼아보는 것이다.

 계절의 줄달음을 확인하는 것은 바로 나무와 숲 위를 달리는 바람 속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속삭임 속에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와 같음을 공감할 수 있다면 생명에 대한 이타심을 원점에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머릿속으로 신선한 바람이 한 자락씩 불어옴을 절감할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프아마토는 걷기는 발과 땅 그리고 인류와 세상 사이에 지속적이고 변화무쌍한 환경이란 무더기 속에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라 했다.

 세 번째 기도하라는 주제이다. 자칫 오해하면 '종교' 울타리에 있는 이들에게 신의 혜택을 받으려면 기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필자 생각은 나의 존재로 인해 그 숱한 생명체들이 나의 음식이 되고 내 육체가 되며 나의 삶의 울타리가 되어준데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희노애락에 대한 감사..그리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진리를

 그 모든 것들이 존재했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고 또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는 삶의 리듬을 느낄 수 있으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삶의 순리를 알게 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본다면 그 감사함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나의 감성이 의지할 수 있는 것, 영혼의 소울메이트를 만들어 보면 한결 안전한 감각 속에서 생을 찬미를 할 것이다.

 끝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줄 수 있는 마음의 싹은 사랑이라는 물줄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감사하는 기도를 하다보면 내 마음의 불편함이 이기적인 DNA로부터 자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말씀했던 '무소유'라는 말이나, 해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울림의 파장이 일어나듯이 감사기도 속에서 맑고 깨끗한 사랑의 물줄기가 시작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다이어트 성공을 위해 처절하리만큼 인내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생각의 방향을 다시 잡아보아야 한다. 내 스스로의 행복함을 만드는 주체는 바로 나의 마음이다. 먹고 걸어가면서 대우주의 아름다움과 소통하고 나를 디자인한 그들을 기도 속에 끌어들이면서 이 모두를 사랑하면 나도 그들도 행복한 미소 속으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하늘이준 가장 보배로운 선물이라고…….그러기에 나를 사랑하고 나를 만들고 있는 그들을 사랑하는 삶이 길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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