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감옥, 제주섬에 드리운 한줄기 빛

물의 감옥, 제주섬에 드리운 한줄기 빛
김순이 시인·표성준 기자의 '제주 유배인과 여인들'
  • 입력 : 2012. 11.23(금) 00:00
  • 문기혁 기자 ghmo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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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연의 감옥, 제주섬은 조선왕조 500년간 정치범 수용소라 불릴 만큼 최적의 유배지였다. 임금 자리에서 축출된 광해군을 비롯해 역모 사건에 휘말린 왕자 등 왕족부터 정계 및 사림의 거목까지 유배인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최악의 변방 절해고도 제주에서 절망했던 유배인들, 그리고 이들의 곁을 지켰던 제주의 여인들이 김순이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관과 표성준 한라일보 기자가 공동 집필한 책 '제주 유배인과 여인들'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어느 때 사약을 받고 죽을지도 모를 낯선 제주섬에서 유배생활을 보내야 했던 유배인들은 유배생활을 돌봐줄 여인을 얻어 의지해야 했다. 세찬 바람과 거친 자연환경에 맞섰던 제주 여인들 특유의 당찬 기세와 어기찬 생활력은 유배인들에게 등불이 되었다. 당대의 지성인이었던 유배인들이 학문을 베풀고 풍속을 교화하면서 제주에 문화적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바로 이 여인들의 뒷받침이 있었던 덕분이다.

유배가 풀리는 순간 유배객들이 떠나버린 자리에는 그들을 보살핀 여인들과 자식들이 남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유배 중에 얻은 첩실과 그 소생에 대해 기록하는 것을 금기시해 그들의 삶을 지탱해준 여인들은 기록되지 못하고 그늘에 묻혔다. 이후 남성들은 역사의 한 장으로 남았지만 여인들은 유배인들끼리 주고받은 시문이나 유배 중에 쓴 글을 모은 문집에서 변죽을 울리듯 애매모호하게 언급될 뿐이다.

'제주 유배인과 여인들'은 제주에 유배된 유배인 중 몇을 선정해 그들의 유배생활을 들여다본다. 정조 시해 음모 사건에 휘말려 참혹한 유배생활을 보냈던 조정철과 3대에 걸쳐 제주섬에 유배되는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북헌 김춘택 등 제주 유배인들과 함께 이들의 곁을 지킨 제주 여인의 자취를 더듬어간다. 특히 처참한 유배생활을 겪었던 조정철의 곁을 지키며 돌봐줬다는 이유로 심한 고문과 매질로 목숨을 잃었던 제주 여인 홍윤애의 이야기에서는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져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배문화'가 제주의 문화적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배인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제주의 여인들이야말로 유배문화에 매혹적인 향기를 부여한다. 유배인들과 더불어 삶과 죽음을 넘나든 여인들 삶의 명암을 들여다 보면 유배객들의 인간적인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조명된 유배인과 여인들의 이야기가 제주 유배문화에 감동과 향기를 덧입히고 있다. 다빈치/여름언덕.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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