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2)성읍리의 메밀이야기-1

[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2)성읍리의 메밀이야기-1
고소한 냄새 맡으면 피어나는 아련한 추억
  • 입력 : 2012. 01.17(화) 00:00
  • /김명선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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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주인의 생활공간과 자취를 만날 수 있는 성읍민속마을의 전통 초가 부엌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지난 14일 이 마을 아낙들이 모여 메밀을 주 재료로 하는 전통요리 재연에 나선 것이다. 장작불을 지피면서 생긴 연기로 인해 눈이 매울 정도였지만 마을주민인 홍복순(66·여)씨는 "이 연기를 많이 쬐면 눈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농을 던진 뒤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처음으로 만든 요리는 메밀의 껍질을 벗겨낸 메밀쌀을 이용해 만든 메밀죽이었다.

재연에 나선 김인자(58·여)씨는 "메밀죽은 예전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전날 술을 많이 드시고 속이 쓰릴때면 항상 찾던 숙취 해소용 음식이었다"며 "무뚝뚝한 시아버지나 남편도 과음을 한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시어머니나 며느리에게 메밀죽을 해달라고 사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진 음식은 성읍리에서 산모가 출산한 후 간식용으로 꼭 먹었다는 가루칸거(가루를 탄 음식을 뜻하는 제주방언)다.

메밀가루를 주 식재료로 이용하는 이요리는 흡사 만드는 과정이 메밀 조배기('수제비'의 제주 방언)와 흡사했지만 뜨거운 물로 반죽 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를 때도 뜨거운 물을 이용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대게 산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 미역국으로 알고 있는데, 미역국은 모유를 수유하기 위한 산모가 젖이 잘 나오도록 도와주는 음식이다. 여기에다 트립토판이란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메밀을 이용해 가루칸거를 함께 먹게 되면 몸안의 나쁜 피를 없애고 새로운 피가 형성되는 한편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

▲성읍리의 메밀 요리들.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메밀죽, 메밀범벅, 메밀가루칸거, 메밀조배기

성읍리 마을의 산모 모두가 예전에는 미역과 가루칸거를 함께 먹었다. 이 모두가 메밀의 특성을 몸소 체험한조상들의 지혜가 곁들어진 음식이다.

다음으로 메밀배기를 초가를 구경온 관광객과 함께 나눠먹은 뒤 메밀범벅을 만들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는 보리, 조와 함께 메밀을 많이 경작했다. 이를 식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많은데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범벅이라는 음식이다.

겨울철 별미 였던 범벅은 재료를 손질하고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 현재 시골마을에서 조차 맛보기 힘든 음식이 되어버렸다.

홍씨는 "성읍리에서는 메밀범벅을 만들 때 메밀가루와 무, 호박, 고구마를 함께 넣어 요리한다"며 "오늘 재연한 범벅요리에는 무를 첨가했는데 끓인물에 무가 익기를 기다린 뒤 메밀가루를 넣고 찧으면 되는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 하얀 메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저어줘야만 제대로된 범벅요리가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무·호박·고구마를 넣을 때 맛의 차이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무는 담백한 맛, 호박은 단맛, 고구마는 돌코름('달콤하다'의 제주 방언)한 맛을 낸다면서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맛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은 모두 4가지 요리가 재연됐는데 메밀을 제외하고는 다른 식재료는 무만 사용됐다. 양념 또한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만 들어갔다.

재연에 나선 아낙들도 이제는 먹지 않는 요리를 오랜만에 재연하면서 맛에서부터 조리과정에 대해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재연에 나선 이유는 어릴적 즐겨 먹던 메밀 음식이 자연밥상으로 새롭게 거듭나 우리들 식탁에까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전통음식 재연 송심자씨 "이제는 자연음식이 우리 식탁에 올라야"

교사로 임용된 뒤 첫 부임지로 성읍초등학교에 발령 받아 근무하던 중 육지에 나가 공부 하던 이 마을 총각과 인연을 맺어 4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송심자(61·사진)씨.

먹을 것이 귀했던 성읍리에 시집 와 가장 먼저 배운 음식이 메밀요리였다.

송씨는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수돗물을 먹었던 나로서는 벌레가 있는 성읍리의 우물을 먹을 수 없어 동네에 하나 있던 구멍가게를 일주일 내내 찾아 물 대신 음료수만 사먹을 정도로 철이 없었다"며 "하지만 성읍리는 당시 먹을 것은 물론 우물마저도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한달 만에 이 물도 없어 못먹을 처지였다"고 회상했다.

해안가 마을에 비해 신선 식재료가 없었던 중산간 마을 주민에게 메밀은 없어서는 안될 식재료였다.

눈이 허리까지 차 오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던 성읍리. 예전 동무집에 갈 때도 잊지 않고 준비해 갔던 것이 메밀이었다. 부모님 몰래 가져간 메밀로 죽, 범벅 등 다양한 간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처럼 예전 성읍리 마을 주민에게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메밀 음식은 없어서는 안될 요리였다.

하지만 먹거리가 풍부해지자 메밀 음식은 점차 외면받게 됐고 이제는 성읍리 주민의 식탁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성읍민속마을의 전통 부엌에서 장작불을 지피고 있는 마을 아낙의 모습. /사진=김명선기자

송씨는 "메밀 음식은 '품에 품었당도 먹나'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로 먹어도 탈이 안나고 조리시간도 짧다는 장점이 있다. 이 지역의 특산품인 무와 결합하면 훌륭한 건강식으로 변한다"며 "양념도 약간의 소금만 있어도 제 맛을 내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웰빙음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주민들이 만든 전통 메밀 요리를 성읍민속마을을 찾는 관광객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4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메밀 요리를 먹었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텐데 이제 이들에게 자연음식으로 변한 메밀요리를 선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양동규 영상 객원기자 프로필

 양동규(사진) 객원기자는 제주대학교 사진동아리, 송동효 사진공방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2006년 '평화의 설렘으로 한반도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있다.

 NGO(제주참여환경연대)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8년 강정마을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를 제작했고, 지난해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을 연출했다.

 한편, 양 객원기자는 '평화의 설렘으로 한반도를 만나다라'는 작품으로 2007년 한국방송위원회대상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상과 '섬의 하루'란 작품으로 2009년 서울환경영화제 우수상을 각각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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