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110)

['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110)
제주·일본 제2차 해외 비교취재 ④ 우사 해군항공대
결호작전 실체 보여주는 항공기지
  • 입력 : 2008. 07.24(목) 00:00
  •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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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해군항공대 격납고 내부. 당시 프로펠러를 전시해 놓고 있으며 바닥에는 항공기 위치표시가 그려져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미군 등 규슈상륙 저지 목적으로 조성
알뜨르비행장과 유사… 의미는 전혀 달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본토결전을 위해 수립한 결호작전 지역 중의 하나가 바로 규슈(九州) 일대다. 일본 남단에 위치한 규슈는 결호작전 7곳 중 결6호 작전지역으로 상정됐다. 당시 규슈 일대는 미군의 유력한 상륙예상지점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규슈 일대에 미군이 상륙한다면 일본의 입장에선 길목에 위치한 제주도의 방어문제가 초미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군은 규슈, 특히 북규슈 방면으로 미군이 상륙할 경우 이에 앞서 제주도를 공략, 기지를 설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정세판단에 따라 제주도는 결7호 작전 대상지로 설정됐다. 즉 규슈와 제주도의 방어문제는 전략적 관점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해되고 있었다.

결6호 작전 지역이라는 중요성을 보여주듯 규슈 일대는 육·해군항공기지와 특공기지 등이 산재해 있다. 우사해군항공대 역시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군사비행장으로 관련 엄체호(격납고) 등 시설이 잘 남아있다. 우사해군항공대는 오이타현(大分縣) 우사(宇佐)시에 위치해 있다. 당시 활주로는 자동차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비행장 규모는 동서 1.2km, 남북 1.3km로 약 150ha 정도 된다.

▲흙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격납고 외부. 구멍이 외부로 돌출돼 있다.

▲안내판등 정비한 우사해군 항공대 격납고 주변.



우사해군항공대는 마치 모슬포 알뜨르 평원지대를 연상시키는 듯한 드넓은 평야에 들어섰다. 1939년10월1일 처음 대원 약 8백 명인 연습항공대로 출발해서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특공기지로 사용됐다. 즉 일본의 패전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전쟁말기 본토결전 시기에 가미가제(神風)특별공격대가 설치돼 오키나와 방면으로 출격 미군 등 연합군을 상대로 자살비행공격이 이뤄졌다.

이곳의 엄체호는 1943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일본 패전 무렵에는 47기의 유개엄체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10기로 모리야마·시로이·하타케다 지구에 흩어져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모바라시에 남아있는 11기의 엄체호 다음으로 두 번째 많은 지역이다.

이 가운데 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시로이(城井)1호 엄체호. 엄체호는 정면 길이 22m, 내부가 약 12m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과 비슷한 크기다. 격납고 뒷부분에는 50×50cm 정도의 둥그런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엄체호 제작 방식. 엄체호는 앞부분은 거푸집을 만들어서 형체를 만들었지만 뒷부분은 흙을 둥그렇게 쌓아올리고 난 후에 그 위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콘크리트가 굳어서 틀이 완성되면 흙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엄체호 제작이 이뤄진 것이다. 지금도 엄체호 내부 천장과 벽면에는 흙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제작방식은 고치해군항공대 엄체호와 같다.

현재 우사해군항공대 엄체호와 주변 일대는 원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비가 이뤄진 상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엄체호 정비. 엄체호는 당시 이곳에 배치됐던 전투기 모형을 내부에 전시해놓고 있다. 바닥에는 전투기 위치 표시를 해놓았다. 격납고 주변은 잔디를 깔아 정비한 상태다. 입구에는 표석과 설명문 안내판 및 안내지도 등을 설치해놓고 있으며, 소규모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당시 특별공격대로 편성돼 출격했다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 진혼비 등을 세워놓고 있지만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사해군항공대는 결호작전지역에 조성된 군사시설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역사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앞으로 알뜨르비행장 등 제주도 일본군 군사시설은 일제 침략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산역사교훈의 장으로써 정비 보전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탐사 포커스]

격납고·항공기 배치 등 시사점

▲육상·함상공격기 등 다양한 기종 배치



우사해군항공대는 모슬포 알뜨르비행장과 연관지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사해군항공대에는 93식육상중간연습기, 1식육상공격기24형, 영식(零式)함상전투기52형, 97식함상공격기, 99식함상폭격기22형 등이 배치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93식중간연습기는 전장 8.05m, 전폭 11.00m, 전고(全高) 3.20m, 최고속도 시속 214km, 항송거리는 1,019km 였다. 이 비행기는 알뜨르비행장에도 배치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1식육상공격기24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장 10m 정도다. 연습기를 포함 다양한 항공기가 배치되고 있었다.

알뜨르비행장의 경우는 1937년 중국 난징을 폭격하는 96식육상공격기의 귀착지로 오오무라(大村)해군항공대로 이용하면서 주둔이 시작됐다. 이어 일본군이 1937년 11월 중국 상하이를 점령하고 그곳에 비행장을 확보한 후에는 오오무라해군항공대 연습항공대가 주둔했다.

항공기는 아카톰보기(Akatombo·오렌지색의 잠자리비행기로 93식 중간연습기) 20여대가 배치됐었다는 증언이 있으며, 제공(制空)용인 영전(零戰)과 육상공격기 등이 배치되거나 배치될 계획이었다. 연습항공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윤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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