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와 제주4·3 경찰유족회가 제주시 조천읍 옛 제1구(제주)경찰서 조천지서 터에 설치한 표지석.
[한라일보] 제주지역 옛 경찰지서 터에 세워진 '4·3 왜곡 논란 표지석'을 강제 퇴출하기 위해 제주도가 처음으로 실력 행사에 나선다.
1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도는 최근 애월읍, 남원읍, 조천읍사무소 등에 '4·3 왜곡 논란 표지석' 실태를 파악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기관은 표지석이 도로 점용 허가를 얻어 설치됐는지, 설치된 곳의 토지 소유자가 누구인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4·3 왜곡 논란 표지석'은 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와 제주4·3 경찰유족회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도내 12개 옛 경찰지서 터에 각각 설치한 것들이다. 이 중 2개는 인근에서 진행되던 공사 등으로 인해 철거돼 현재 10개가 남아 있다. 논란은 이 표지석들이 제주 4·3을 왜곡 기술해 이념 논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촉발됐다.
제주시 조천읍 옛 제1구(제주)경찰서 조천지서 터에 세워진 표지석은 1948년 4월3일 5·10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에 대해 4·3진상조사보고서 기술과 달리 '폭도'로 표현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함덕지서 옛 터에 설치됐던 표지석의 경우 무장대를 '공비'로 지칭했다.
4·3당시 군대가 주둔한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초등학교의 교문 앞에 지난 2016년 설치된 표지석.
4·3당시 군대가 주둔한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초등학교의 교문 앞에 설치된 표지석은 '무장대'로 표현하고 있지만, 양민 80여명이 총살 당한 사실을 서술한 대목에선 정작 희생자들이 누구에 의해 총살됐는지를 기술하지 않아 국가 폭력 책임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샀다. 반면 무장대와의 전투에서 국군이 전사·부상한 사실은 자세히 기술됐다.
이밖에 옛 대정지서 표지석은 무장봉기 목적을 대한민국 건립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술해 4·3진상조사보고서와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표지석 설치도 불법적으로 이뤄졌다. 제주도에 따르며 10개 표지석 중 도로에 세워진 7개가 도로 점용 허가 없이, 나머지 3개가 토지주 허락 없이 무단 설치됐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21년 송재호 국회의원은 "이념 갈등과 공동체 분열을 낳을 수 있다"며 대책을 요구했지만, 그간 제주도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제주도가 자진 철거만 요구하고 강제성을 띤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4·3 왜곡 논란 표지석 상당수는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던 제주도가 최근 강경 대응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도의회 4·3특위가 4·3 왜곡 논란 표지석에 대해 강력 대응하라고 주문한 것이 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는 앞으로 설치 단체에 표지석 자진 철거 또는 왜곡 문구 수정을 요구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변상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실력 행사에 나설 방침이다. 제주도는 수년 전부터 불법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설치 단체와의 마찰을 우려해 지금껏 변상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도 관계자는 "도로 불법 점용 시설물에 대해선 (관할관청이 물리력을 동원해 철거하는) 행정대집행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변상금 부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이번 방침은 사실상 4·3 왜곡 논란 표지석을 강제 퇴출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지주 허락없이 세워진 나머지 3개도 공유지를 끼고 설치돼 있어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의 이런 대응 방침에 대해 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 이동해 대표는 "폭도라는 표현은 4·3당시 도민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말"며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문구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는 "4·3 유적지를 보전하고 기리기 위해 표지석을 설치한 것으로 도로 점용 허가 등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며 "제주도의 공식 통보가 오면 회원들과 의논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