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왕벚 자생지 안내 표지판에도 '소메이요시노' 표기 국립수목원, '왕벚나무' 이름 재배식물목록으로 옮기며 논란"학명 등도 정리 필요… 국내 학자들 머리 맞대야" 목소리도
지난 19일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거대한 왕벚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선 듯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 높이가 10m를 훌쩍 넘겼다.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된 이 자생지에는 왕벚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자생지 입구에 자리한 표지판은 제주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알렸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같은 내용이 설명됐는데, 이름 표기가 엇갈렸다. 한국어로 '왕벚나무', 일본어로 '소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왕벚나무'의 일본명). 제주 자생 왕벚나무에 이 같은 표기를 쓰는 건 맞지 않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제주도는 최근 부랴부랴 왕벚나무 이름 표기를 바로잡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59호인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에 있는 일본어 안내 표지판에 '소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자생지'라고 적혀 있다. 김지은기자
다시 불거진 왕벚나무 기원 논란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왕벚나무' 이름 문제다. 국립수목원은 2018년 "제주도 왕벚나무는 일본 왕벚나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왕벚나무 명칭을 정리했는데, 그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2020년 펴낸 국가표준식물목록(자생식물편)에 '왕벚나무'를 빼고 '제주왕벚나무'를 넣었다. 기존 '왕벚나무'라는 이름은 재배식물목록으로 옮겨 놨다. 그 이유에 대해 국립수목원 측은 "기존엔 제주 왕벚이든 식재된 왕벚이든 모두 '왕벚나무'였다"며 "유전체를 분석해 보니 전혀 다른 계열로 만들어진 것을 확인했고, 왕벚나무에 제주를 붙여 자생식물목록에 넣었다"고 했다. 하지만 '왕벚나무'라는 고유 이름을 자생 왕벚이 아닌 재배 식물에 내어 줬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히 가로수로 식재돼 있는 재배 왕벚을 '소메이요시노'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국립수목원의 발표대로 '제주 왕벚과 일본 왕벚은 기원과 종이 다르다'는 데 동의하는 측인데, 여기에서도 제주 자생 왕벚은 '왕벚나무'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와 반대로 '왕벚나무'는 그 이상의 또 다른 이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전 세계적으로 왕벚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제주·해남 대둔산)가 유일하고 일부 주장처럼 '일본 왕벚나무'가 '일본에서 인위 교잡을 통해 만든 잡종'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수목원의 발표를 반박한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국립수목원이) '일본 왕벚나무'라는 종이 없음에도 이를 자의적으로 인정해 지금까지 불러온 '왕벚나무'를 보도자료 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본 왕벚나무'라고 불렀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왕벚나무'라는 이름을 제대로 세우는 것은 왕벚나무 자생지의 가치를 지키고 널리 알리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제주 자생 왕벚나무의 자원화·세계화를 위한 시급 과제임에도 분명하다.
정홍규 대구교구 신부(에밀타케식물연구소 대표)는 "왕벚나무 이름만이 아니라 일부에선 그 학명을 '소메이요시노'와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끼리 다툴 게 아니라 국내 학자들이 제대로 머리를 맞대 혼돈이 없도록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도에서부터 컨퍼런스나 포럼 등을 통해 (최근 논란이 되는 왕벚나무 기원과 명칭 문제 등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