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지금은 회의(懷疑)할 때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지금은 회의(懷疑)할 때
  • 입력 : 2021. 09.08(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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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올 여름은 몹시도 더웠다. 코로나19 확진자가 30명이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에 따라 사회적 불안은 더욱 심해졌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까닭이 없는 관광객들은 제주의 해수욕장을 찾아 그들만의 휴가를 즐겼다고도 했다. 8월 말부터 시작된 가을장마는 백로를 보내고도 제주도의 풍경 위에서 비구름으로 머물고 있다. 대선은 축제가 됐으면 좋겠는데 정국은 제주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혼란스럽게 할 것만 같다.

가을이면, 파란 하늘과 탐스러운 열매들을 바라보며 보름달의 풍요로움을 연상해도 좋으련만, 농부들은 언제 갑자기 남태평양 어디쯤에서 발생해 제주를 뒤집어놓을 태풍이 걱정된다고도 한다. 또 이런 걱정과 무관한 것처럼 언제나 그래왔지만 대선 정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고 특정 당을 지지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곤 한다. 문득 이런 현상이 거의 맹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오싹할 정도로 두렵다.

'시선(視線)'은 언제나 '특정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앎과 관련될 때는 '특정한 방식'만이 최상이거나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정한 방식'은 사람마다 각각 다른, 보는 방법이나 위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사고과정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가치체계도 중요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이것마저도 '특정한 방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인식한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매체에 의해 수많은 정보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하나하나 분석하며 그 가치를 진단하기는 쉽지가 않다. 우리는 이미 거의 고착화된 '어떤 체제'에 의해 그 정보들을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특정한 방식'이란 바로 '어떤 체제'의 하위 개념이다. 이 현실이란 앵글(angle), 제주도의 문제란 프레임(frame)을 주고 보게 한다면 너무도 다양해서 그 경중을 따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앵글과 프레임 안의 것조차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너머에 있는 것까지 보게 되기도 한다.

회의(懷疑)란, 철학에서 인식의 확실성을 보류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충분한 근거가 없어 판단을 보류하거나 중지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는 기원전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나 현대 철학의 거장들로부터 인식의 과정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귀동냥으로라도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편벽(偏僻)돼 자신의 앎(어떤 체제에 의해 바라본 하나의 판단)에 맹목하며 대타(對他)를 핍박하게 되는가.

제주 사회도 대선 정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대선 이후 지방선거의 방향이 결정되고 지금 물망에 오른 후보는 물론이고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해 도민의 선택을 받게 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미래 사회로 나아가는 많은 변수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 제주 사회가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주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특정한 방식, 어떤 체제만을 맹목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디더라도 회의하며 진단해 나가자.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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