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무식한 놈

[김양훈의 한라시론] 무식한 놈
  • 입력 : 2021. 08.19(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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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의 문턱을 넘은 지 열이틀이고,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가 나흘 앞이다. 가을 초입 9월이 오면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산국이 바람에 흔들리며 온 들판에 만개한다. 바닷가에는 난쟁이 해국이 하늬바람에 기지개를 켜리라. 이 가을꽃들을 우리는 분별함이 없이 한통속으로 '들국화'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들국화란 이름의 종명(種名)은 없다.

올해 가을은 들국화의 개화와 함께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내년 대통령 선거일인 3월 9일까지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의 계절을 살아야 한다. 선거판이 가열될수록 우리의 눈과 귀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후보를 골라내야 한다. 그런데 선거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줘야 할 대중매체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제철 만난 메뚜기처럼 중구난방이다. 그러나 거짓 뉴스로 독자를 속이기는 쉬울지 몰라도 푸른 하늘을 속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요즘 '기레기'란 조롱을 받는 소위 레거시 언론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그들이 가졌던 오피니언리더로서의 역할은 옛말이 돼가고 있다. 종이신문 구독율도 6%까지 떨어졌다. 사람들은 여론형성을 주도했던 그들의 기사를 직접 읽는 대신 휴대전화로 뉴스를 소비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언론의 신뢰도는 조사대상 40여 개국 가운데 5년간 꼴찌다. '언론자유지수'는 매년 상승하는 반면 '언론 신뢰도'는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 레거시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객관성을 잃은 기사의 양산으로 구독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기사일수록 언론은 출처 불명의 뉴스를 팩트 체크 없이 생산하고 왜곡하기 일쑤다. 이를 본 구독자들은 자신의 뇌피셜에 맞게 기사와 영상을 단체 채팅방으로 퍼트린다.

1인 미디어로 시작한 유튜브 저널리즘이 요즘 대세다. 이러한 흐름은 언론인이 되는 진입장벽을 허물고 있다. 누구라도 스스로 '기자'라고 칭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뉴미디어의의 출현은 기존 언론의 독점권력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는 축복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널리즘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거짓 뉴스로 위대한 민주국가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징벌적 손해배상법 발의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 역사적인 시점에 대한민국을 이끌 가장 합당한 대통령을 뽑는 일은 국민의 중차대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아무리 정치인을 희화화(畵化)하고 상종하지 못할 모리배라 욕하지만,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뿐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 영향을 끼친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말처럼,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그러므로 들길을 걷다 들국화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의 정체를 밝혀보자. 세상 물정에 어둡거나 진영논리에 꽉 막혀 거짓 뉴스를 단체 채팅방으로 퍼 나르는 친구가 있다면 이 한 편의 시로 점잖게 답하시라!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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