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예술을 키우는 미술품 수장가(收藏家)

[김연주의 문화광장] 예술을 키우는 미술품 수장가(收藏家)
  • 입력 : 2021. 07.20(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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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동안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 1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개관 첫날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의 긴 줄과 주말 예약 매진 상황이 여러 신문에 기사화될 정도로 전시는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기증된 '이건희 소장품' 21점 덕분이다. 수장가가 이처럼 대중에게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기에 보통 수장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힘들다. 또한 요즘처럼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수장가를 개인 소유에 의미를 두는 소장가(所藏家)나 돈을 벌기 위한 투자자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사를 살펴보면 수장가는 예술 작품을 보존하고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종의 공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미술품 소장이 단순히 미술품을 구입해서 소유하는 행위가 아님을 보여주는 예는 수없이 많다. 페기 구겐하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질 위기에 있던 현대미술 작품을 구했다. 그가 전쟁 중에도 파리에 머물며 작품을 구입해 보관했기에 지금 우리가 그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찰스 사치는 영국의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를 키워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가 구입했기에 오늘날의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등이 있다. 즉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은 후대에 작품이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이다.

페기 구겐하임이나 찰스 사치와 같은 수장가가 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엄청난 재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재력이 있어야만 미술품 수장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장(收藏)은 '거두어서 깊이 간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사서 깊이 간직하면 수장가가 된다. 한 명의 수장가가 여러 작품을 소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한 명이 한 작품만을 소장하더라도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한 작품이라도 소장하게 되면 미술에 관심이 커지고,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관심과 이해는 예술가에게 힘을 주며, 작품 판매는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미술관이 모든 작가의 작품을 다 구입할 수 없다. 특히 미술관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장가도 소장의 종류와 양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기 위해서는 한 작품씩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구입해야 한다. 다만 투자가 아니라 작품이 좋아서 구입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주도민 모두가 미술품 수장가가 됐으면 한다. 포스터가 아니라 작은 작품이라도 원본을 구입하면 좋겠다. 작품을 집에 두고 날마다 감상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러한 기쁨이 작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소중히 간직한 그 작품이 후대에 남아 감상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일종의 의무감마저 생길 수 있다. 지금처럼 누구의 소장품이라고 해서 지나친 관심을 받는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소장품을 즐기게 되길 바란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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