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끝과 시작은 하나다

[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끝과 시작은 하나다
  • 입력 : 2021. 06.09(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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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의 의미를 함의(含意)하고 희망과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예정 없이 찾아간 곳은 서귀포 천지연 폭포 하구에 있는 생수괴, 새연교 낚시터, 황우지, 동굴 등을 돌아보니 옛 생각이 또렷이 아른거린다.

특히 어느 선생님의 착상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국민소득 100불도 안되는 생활환경 속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바다 수영할 기회를 얻는다는 건 학생들에겐 신바람이 이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가지고 온 1000여 개의 보리짚단을 튜브용으로 서귀포 항구에 풀어놓는 순간, 아이들은 즐거운 함성 소리와 함께 잠수하는 풍광은 가히 장관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풍광으로 오버랩된다.

아이들이 큰 기쁨은 바다에서 뜰 수 있는 능력과 1m라도 더 헤엄쳐 나아갈 수 있는 잠재능력을 발견하는 일이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내린 비가 옹달샘과 개울을 거쳐, 온갖 고뇌를 감내하면서 장엄하게 낙화되는 천지연 폭포수가 생수괴에 이르면 민물로서의 마지막을 고하고, 바닷물과 합수하는 풍광은 자못 인생에 대한 삶의 사색을 유혹한다.

민물인 천지연 폭포수와 바닷물이 서귀포 항구에서 합수되는 장면은 자연의 향연치고는 너무도 조용하고 엄연하고 경건하다. 민물로서의 시작과 끝의 삶은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억겁(億劫)의 기나긴 여정을 달려 왔는가. 마치 수도승들이 길고도 먼 수행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오직 바다만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높은 자리도 마다하고, 앞지르기도 거부하고, 그 누구와도 야합하지 않고, 역행 없이 오르지 낮은 곳만을 향해 살아온 겸손과 순수함 그 자체의 모습이다. 파란 만장한 물의 천리길이 어찌 우리네 인생과 무관타 할 것인가. 민물은 대양을 찾아 흐르는게 자연의 본성이다. 가다가 막히고 넘어지면, 일어서서 돌아서 가고, 급경사일 땐 곤두박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갈리고 부서지면 다시 모여질 때까지 기다리고, 독극물과 이물질에 오염되면 사경을 해매면서도 포용하고 흐르면서 정화시켜 나간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 아니듯이 민물의 끝은 바다가 아니다. 민물이 대양에 이르면 줄기차게 흐르던 흐름도 잠시 멈추었다가 구름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윤회의 삶을 열어간다.

그래서 대양은 아무리 큰 홍수가 와도 넘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가뭄이 들지 않는다. 대양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한한 곳이며 영원을 지향한다.

달리다가 쓰러지면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크고 작은 일, 좋고 궂은 일 등을 다 거치며 한평생을 우리네 삶과 함께 살아간다.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민물의 삶을 떠올리며 생수괴 목로주막에서 턱없는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폭포수의 민물과 대양으로 가는 바닷물도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았다.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내주고, 아무런 표정 없이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미미한 자신을 발견한다.

민물로서의 시작과 끝은 바닷물로써 끝과 시작일 뿐, 한선상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민물인 폭포수는 흐르다가 멈추면 썩어도 대양은 흐르다가 멈춰도 썩지 않는 게 자연의 순리다. 따라서 민물과 바닷물로 이뤄진 대양은 고차원의 더 큰 하나가 돼 윤회(輪廻)의 삶을 살아가는가 보다. <부희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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