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프로와 대중의 시대상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프로와 대중의 시대상
  • 입력 : 2021. 03.31(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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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프로 선수들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모든 게 용인되지는 않는 시대다. 프로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자다. 프로들은 주로 스포츠계나 연예계에 있다. 프로는 자기 분야에서 뛰어나 높은 인기를 얻으면 스타가 된다. 스타는 팬들로부터 남다른 기대와 성원을 먹고 산다. 요즘 팬들이나 대중의, 프로와 선수에 대한 판단과 대우는 매우 냉철해지고 있다. 영원히 추앙 받는 스타도 없고 변함없이 추종하는 팬들도 드물다. 훌륭한 스타도 일순에 무너질 수 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는 팬에게 고용되어 있는 셈이다. 들은 얘기로, 고종 임금이 등장하는 일화가 있다. 서양인들이 영국대사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왕께서는 이를 보시고, '그렇게 힘든 일은 머슴에게 시키지 왜 직접 고생하느냐'라고 하셨단다. 공교롭게도, 요즘은 팬이 '그렇게 힘든' 일을 프로 선수에게 시키는 그런 시대가 됐다. 팬은 프로 선수에게 응원이나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그 선수에게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때 그 팬은 그 프로 선수를 부리는 주인이다.

스포츠계에서든 연예계에서든 프로는 팬들과 대중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실력과 성실성, 그리고 봉사정신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고, 도덕적으로도 훌륭해야 한다. 프로가 제대로 잘못해 팬이나 대중이 응원을 거두면 그는 힘을 잃는다. 선수와 주인의 관계가 이처럼 맺어진 곳은 경기장이나 공연장 외에 더 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분야에서부터 예술계, 언론,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자들은 살아가는 동안 당분간 그 자리를 점한 일종의 '선수'일 뿐이다. 이들은 유권자, 시민, 소비자, 독자와 시청자 등, '주인'의 지지와 응원을 먹고 산다.

이런 '선수와 주인'의 역할을 잘 모르는 세상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별난 세상에선 '곡학아세'와 '혹세무민'이 판을 친다. 가짜 뉴스와 억지 주장이 함께 날뛴다. 원칙과 법도가 무너져 있다.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데, 제어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후안무치'도 제법이다. 옳고 그름을 가늠하느라 주인들은 심기가 참으로 불편하다. 선수들의 행태를 보면, 자신이나 자기편에는 춘풍(春風)이요, 남이나 상대편에는 추상(秋霜)이다. 프로 스포츠 세계였다면, 이들은 이미 사라졌을 터이다. 스포츠나 연예의 세계에서는 그리도 냉정하고 혹독한 대중이 여기선 웬일인지 무척 관대하다.

아름다운 세상의 구현을 위해 대중은 주인으로서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다. 역사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만이 아니라 경험과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고, 또 이를 실천해야 한다. 욕하면서 닮아 가서도 안 된다. 민초든, 백성이든, 시민이든, 깨어 있어야 미래든 희망이든 기대할 수 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선수, 반칙을 일삼는 선수, 뻔한 거짓말을 하는 선수는 주인을 무시하고 있다. 이를 묵인하면 일반대중이 종국에는 선수의 노예가 된다. 주인은 정신을 차리고 제 권리를 지혜롭게 잘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반대중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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