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예술가의 이름

[김연주의 문화광장] 예술가의 이름
  • 입력 : 2021. 03.30(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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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고를 때 기능과 성능이 같은데 가격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왜 다르냐고 물어보면 단지 브랜드 때문이라고 한다. 브랜드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그림도 이와 비슷하다. 195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0달러에 낙찰됐던 ‘살바토르 문디’는 201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판정받았다. 그러자 진위 논란 속에서도 2017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처럼 대가가 그렸다고 인정받는 순간, 작품 가격은 높아진다. 즉 예술가의 이름이 작품 소장자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위작이 끊임없이 제작되는 이유도 누구의 작품이냐가 작품 가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이름이 때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영국의 스트랫포드 어픈 에이븐은 찾아가기 힘든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뿐만 아니라 유명 예술가가 살았던 집, 작업실, 즐겨 찾던 카페 등도 이름난 관광지가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우리나라 도시들도 작고한 유명 예술가의 이름을 빌려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자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도 그곳에 잠시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이름을 거리에 붙여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이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고 이중섭 거리에서 관광을 즐긴다.

작품의 예술성이 높으면 예술가가 유명해질 것 같지만, 예술성과 명성은 비례관계가 아니다. 어떤 예술가는 작품이 좋아도 이름을 얻지 못한다. 널리 알려진 예술가의 작품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다. 미국 미술 포털사이트 아트시의 편집자인 캐시 레서의 글에 따르면 예술가의 유명세는 창의성과 독창성이 아닌 친구 때문이다. 예술가가 죽고 한참 뒤에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으니, 친구 외에도 예술가에게 명성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다양하겠지만, 창의성과 독창성이 보다 친분 관계가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는 쉽게 수긍이 된다. 창의성이 뛰어난 예술가가 여전히 무명으로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작품이 주는 감동은 결코 예술가의 이름에 달려있지 않다. 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알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에 눈물을 흘렸다는 경험담은 흔히 듣는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나에게는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즉 도시나 기업이 예술가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에 기인한 하나의 사회 현상일 뿐, 예술 자체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저 예술가의 이름을 소비할 뿐이다.

예술가가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유명한 예술가만을 주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예술가의 이름이 사회에서 그저 자본 증식이나 경제 활성화 등에 이용되거나, 작품의 의미가 아닌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하거나, 자신의 안목을 믿지 못하고 잘 알려진 예술가의 작품만을 찾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예술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를 찾고 알아가는 기쁨을 느껴가길 바란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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