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의 문화광장] 제주4.3레퀴엠

[홍정호의 문화광장] 제주4.3레퀴엠
  • 입력 : 2021. 03.23(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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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합니다. 그러니 재판장님은 장차 하느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하여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1948년 8월 14일 미군정 군법회의에서의 문상길 중위의 법정 마지막 진술이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사건의 주모자로 그해 9월 23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주4.3레퀴엠은 필자가 2022년 초연을 목표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곡 목록이다. 음악으로 살아있는 자에게는 위로를, 죽은 자의 영혼에게는 평안의 안식을 기원하고자 함이다. 레퀴엠은 안식을 뜻하는 라틴어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미사' 중 가사의 첫 소절인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라틴어-영원한 안식을 허락해 주십시오, 오 주님)에서 가지고 왔다.

2020년 이탈리아는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에서 사후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날짜인 3월 25일을 단테에게 헌정하는 국가국경일로 제정했다. 올해는 단테의 사망 700주년을 기념하고자 DANTE 2021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단테의 신곡은 사후의 영혼이 신성한 정의의 심판 아래 처벌과 보상 아래 지옥 Inferno, 연옥 Purgatorio 그리고 천국 Paradiso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옥, 인페르노는 죄에 대한 종류와 형벌의 수위를 이야기하고 있다. 죄에 대한 심판의 기준을 말하고 있다. 레퀴엠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라면 신곡은 더 넓은 개념의 심판과 위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레퀴엠 안에 '심판의 날'이 있다. 가장 유명한 부분은 베르디의 레퀴엠 가운데 진노의 날이라 불리우는 디레스 이레(Dies irae)이다. 분노와 파멸의 날이 다가왔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심판자에 의한 심판의 날을 묘사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은 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혹은 내란실행 혐의로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국가가 완전한 정체성 갖지 못했을 때 피고인들은 목숨을 빼앗겼고 자녀들은 연좌제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과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냈는지, 국가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몇 번씩 곱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오늘의 선고로 피고인과 유족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지고, 고인이 된 피고인들은 저승에서라도 이제 오른쪽, 왼쪽 따지지 않고 낭푼에 담은 지슬밥에 마농지뿐인 밥상이라도 그리운 사람과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정을 나누는 날이 되기를,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이러한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법률안 공포까지 대통령 재가와 관보게재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땅에서의 심판이 하늘에 도달하기를 빈다. 4·3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모두가 그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문상길 중위는 분명하게 하늘의 법정에서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홍정호 한국관악협회 제주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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