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이라면 누구나 4·3의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4·3을 소재로 작품을 쓰지만 지속적으로 남다른 집착을 보이는 이가 고시홍 소설가이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란 등 '현재진행형'인 서사를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그가 소설집 '물음표의 사슬'을 냈다.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비극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어떻게 이름없는 삶들을 훼손시켰는지 사실적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 어떤 '신식'소설적 기법도 없이 말이다.
가장 중심적인 것은 제주 4·3이다. 작가는 '물음표의 사슬'에 실린 9편의 단편과 1편의 주편 중에서 5·18 광주항쟁을 다룬 '망각의 곡선'과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력을 다룬 '귀양풀이'를 제외한 전 작품이 제주4·3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특히 4·3은 내 운명이자 탯줄이다. 소설쓰기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4·3의 족쇄'를 채웠다. 오랜세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한다. 왜 그는 자신에게 '4·3의 족쇄'를 채웠을까. 그는 "8개월 남짓 토벌작전을 벌인 제2연대는 4·3진압앨범 '제2연대 제주도주둔기'를 남겼는데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자 유산이었지만 1990년대 4·3진상규명 열풍에 휩쓸려 돌아다니는 과정에 분실됐다"는 사연을 전했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는 제주 4·3이 탄생시킨 주체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 비극적 개인사가 소설집을 특징짓는 계기가 됐을지 모른다.
작가는 입산한 무장대의 관점도 취하지 않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토벌대의 입장도 배제한다. 작가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제주인이라는 변방의 관점이다. 제주인의 관점에서 4·3은 '국가폭력이 자아낸 비극'인 셈이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이 시대적 삶에 얼마나 잔인하게 노출될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며, 그 소용돌이의 주체가 바로 국가의 폭력임을 상기시킨다. 또 이야기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의 그림자가 오늘날에도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집중적으로 묻고 있다. 작가의 소설적 의도는 명확하다. 제주 4·3의 배후에는 '국가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해군기지 건설의 배후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유신시절처럼 신문기자의 아주 사소한 업무상 실수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작가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실 상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러한 국가 폭력이다.
또 이 소설집의 미덕은 제주어를 재현하려는 작가의 고투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작가는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대통령의 손수건' '계명의 도시' 외에 '고려사 탐라록'(공동 편역)을 발간했으며, 탐라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있다. 삶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