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두영화, 한 이야기

[생로병사]두영화, 한 이야기
  • 입력 : 2013. 08.02(금) 00:00
  • /조상윤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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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재 제주대학교병원 흉부외과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콘스탄틴'. 이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하나의 대사가 와 닿았다. 주인공에게 소환된 지옥의 루시퍼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자기 희생'으로 인해 천국에 가게 된 주인공을 되살리며 한 말이다. "You will live!". 중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Shall과 Will 의 차이가 뭐지? "요즘은 그런 거 신경 안 써"라는 주변 영어 달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의 의지와 운명적인 것의 차이라는 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주어가 'You'에서 'I'로 바뀌면? 나는 내 의지에 의해 사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지에 의해서 사는 것일까?

또 하나의 명작 해리포터 시리즈 마지막 편. 볼드모트의 마지막 호크룩스가 자신임을 알게 된 해리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장면이 있다. 물론 영화에서 호크룩스는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떼어 보관하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설정돼 있지만, 우연히도 나는 아주 어릴 적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주 짧은 한 순간 만이라도 동시에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순간 '뿅' 하고 사라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어떤 순간에라도 나를 기억해 주어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내겐 호크룩스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많은 호크룩스에 의해 살아 있게 되고,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호크룩스일 것이다. 그렇다면 I will live가 맞는 것일까? I shall live가 맞는 것일까?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안타까운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데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들을 대할 때이다. 현대의학의 발달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많은 질병들의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단을 너무 늦게 받은 경우, 질병 이외의 건강 상태로 인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 등은 환자뿐 아니라 치료자에게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의 호크룩스로써, 또 나의 수많은 호크룩스들을 위해 우리는 건강을 지키고 개선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I Shall Live"이므로. 질병이라는 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무관심과 자만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질병이라는 적과의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 첫째, 필요 없는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평소 적절한 운동과 건강관리로 질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훌륭한 승리가 아닐까? 둘째, 적보다 내가 먼저 적을 발견해야 한다. 정기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효과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다. 셋째,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싸워 이기겠다는 것이다. 나의 건강은 나 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적극적인 태도로 건강을 지키는 것은 나의 권리이자 의무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석재 제주대학교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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