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 전래와 토착문화와의 갈등

천주교의 전래와 토착문화와의 갈등
박찬식의 '1901년 제주민란 연구'
  • 입력 : 2013. 06.14(금) 00:00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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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란'으로 익히 알려진 1901년 제주민란은 민란에 참여한 민군과 교회에 입교한 교민 모두 제주지역 주민이었다는 점에서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이들 중에는 민란으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삶을 보존하려던 이도 있었을 것이고, 같은 화전민일지라도 징세를 거부하며 저항하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관의 징세를 부정하고 감면시키는 또 다른 힘을 가진 교회에 입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 기억은 100년의 시간이 갖는 무게만큼이나 장기적으로 지속돼 왔다.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들은 사람들 모두 그들의 기억을 공유했고 후세대에 전승시켰다. 20여 년이 지난 뒤 김석익·김형식 등 몇몇 지식인에 의해 기억은 비로소 기록으로 남겨지게 됐다.

저자는 1901년 제주민란을 외래문화와 토착문화의 갈등 측면에서 검토했다. 한국근대사에서 외면돼 왔던 외적 변수에 의한 향촌사회의 변동의 역사를 주목한 것이다. 한국근대사 연구에서 향촌사회사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까닭은 근대 이후 향촌사회의 변동에서 내재적 요인 외에 외래적 요소의 파급이 중요한 점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시기 외래문화는 서양 종교와 근대 교육을 통해 향촌사회에까지 보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 사회상을 문화·종교적인 면에서 검토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901년 제주민란 과정에서 만남과 갈등으로 점철된 사람들을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교회에 입교한 교민이나 민란에 참여한 민군들 모두가 저자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은 1901년 제주민란에 대해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문화사적 접근의 한 시도이다.

저자는 "제주근현대사에서 공동체 분열을 가져왔던 사건 중 하나인 '4·3'은 2003년 10월 대통령의 사과로 평화와 화합의 길을 열었다. 같은 해 11월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천주교제주교구는 화해선언을 함으로써 제주민란에 대해서도 상호 화합의 방향을 공식적으로 설정했다. '기억 외면'에서 '기억 충돌'로 갔던 시대를 접고 이제 '기억 화합'을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머리글:민란을 보는 인식과 관련 자료'에서부터 '민란의 역사적 기억'까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지역별 교민과 평민 물고자 수와 민란주도세력, 교세 현황 등을 표로 작성해 이해를 도와준다.

제주대 사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서강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제주4·3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장과 제주대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제주항일독립운동사'와 '4·3의 진실' 등이 있다. 도서출판 각.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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