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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9] 3부 오름-(48)몽골어계 '절물', 아이누어계 ‘대나’, 퉁구스어계 '답인'
절물오름, 수많은 화석이 켜켜이 쌓인 언어 지층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7.09. 01:00:00
이름이 무려 16개, 아리송한 절물오름의 지명


절물오름 못, 오름의 사면에서 흘러드는 강수와 샘물이 고여 못을 이뤘다. 산악인 강연심 제공

[한라일보] 절물오름은 제주절물자연휴양림으로 인기가 높다. 표고 696.9m, 자체높이 147m다. 이 오름은 아주 가까이에 또 다른 오름과 연접해 있어 하나의 오름 두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 큰 오름을 큰대나오름, 작은 오름을 족은대나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족은대나오름은 자체높이 120m로 큰대나오름보다 27m 가량 낮다. 큰대나오름은 처음부터 이렇게 불렀다기보다. 이보다 작은 족은대나오름을 구분해 부르면서 이에 대비가 되게 불렀을 것이다. 홍길동이가 아들을 낳으면 고모, 이모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고~ 아까워라, 족은 길동이로고나~ 한다. 그렇다고 아빠 길동이를 큰길동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큰대나오름이라는 이름은 어색하다.

1653년 '탐라지' 등에 답인악(踏印岳), 1703년 '탐라순력도' 등에 대천악(大川岳), 그 외로도 여러 고전에 대내악(大乃岳), 단하봉(丹霞峰), 소단하(小丹霞), 답인산(踏印山, 다나악(多那岳), 절물오름, 사악(寺岳), 지역에서는 단라악(丹羅岳), 단내악(丹乃岳이), 소다라악(小多羅岳), 소굼부리(小굼부리), 사수악(寺水岳), 대나오름, 다나오름, 절물오름으로 부른다. 이렇게 거명된 이름은 모두 16개나 된다. 크게 다나오름, 답인오름, 절물오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 절물오름은 무슨 뜻인가? 대체로 이 오름 북서쪽에 절이 있었고, 그 가까이에 약수터인 절물이 있는데, 이 오름의 이름은 여기에서 연유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절이 있었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도 없다.





실재하지 않는 근거로 지명유래 추정


절물오름 샘, 계절에 따라 용출량에 차이가 있으나 연중 끊임없이 솟는다. 김찬수

절물이라는 지명은 제주도 내 여러 곳에 산재한다. 대체로 이와 유사하게 풀이한다. 예컨대 제주시 해안동 '화랑마을' 동북쪽 언덕 아래에 샘물이 있다. 이 샘물도 절물이라 한다. 이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로 이웃한 밭에서 기왓조각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절(寺)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절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이웃한 밭에서 기왓조각이 나온 것만으로 절이 있었고, 그래서 이 샘물을 절물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제주시 외도동 우렝이 북쪽 '절디'(절디밧)에 있었던 샘물도 절물이다. 이 샘물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수정사(水精寺)라는 절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샘물이라 한다. 수정사라는 절과 이 샘물은 어떤 관계인지, 수정사라는 절이 이 샘물 가까이 지으면서 절 이름을 수정사라 한 것인지, 이 절이 생겨나서 절물이라 한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 절이 없었을 땐 어떤 이름을 썼다는 것인지도 언급이 없다. 예컨대 서귀포시 대포동에 있는 약천사(藥泉寺)는 좋은 약수가 흐르는 샘이 있는 근처에 절을 지었다고 하여 약천사라 했다. 약천사란 절이 있고 약천이 생긴 건 아니다.





절물오름, 샘과 연못이 있는 산
대나오름, 물과 계곡이 있는 산
답인오름, 물이 많은 산


'절물'을 '절에서 쓰던 물'이란 식의 해석은 현대 국어에서 견인된 측면이 강하다. 오늘날 절(寺)을 옛날에도 똑같이 썼을 것이란 믿음이 굳건한 것이다. 과연 제주도 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절이란 제주도에 언제 들어왔으며 어떻게 발음했을까? 절이 들어오기 전 지금의 절물은 무엇이라 했을까에 대한 해명이 전제되지도 않는데 이렇게 풀이한다.

최근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 홍기표원장의 연구에 따르면 불교가 제주도에 들어온 시기는 백제 위덕왕(재위 서기 553~597년) 때이다. 따라서 '절(寺)'이란 말은 아무리 빨라도 서기 6세기 중반 이후에나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절물오름을 비롯해 제주도에 산재한 절물을 절에서 쓰던 물이라고 하려면 이 지명은 이후부터 썼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절물오름에서 보이는 '절' 관련어가 알타이제어에 여럿 있다. 공통어원은 '저헬'이다. ① (물이) 깊은, ② 샘이 있는 곳, ③ 작은 연못을 지시하는 말로 여러 갈래를 쳤다. 이 말이 중세 몽골어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발음하는 바와 거의 유사하게 '체엘'로 나타난다. 할하어에서도 유사한 발음으로 나타나고, 부리야트어에서는 '셀'이라 한다. 칼미크어는 '첼', 다구르어에서는 '첼레'가 대응한다. 이런 음으로 볼 때 절물오름은 실은 '절오름'이었으며, '물'은 덧붙은 말이 된다. 이중첩어 구조다. 이런 언어구조로 볼 때 절물오름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절'이라는 말에 '물'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고 볼 수 있다.

대나오름계열은 가지를 많이 쳐 10가지다. 다나오름, 다나악(多那岳), 단내악(丹乃岳), 단라악(丹羅岳), 단하봉(丹霞峰), 대나오름, 대내악(大乃岳), 대천악(大川岳), 소다라악(小多羅岳), 소단하(小丹霞) 등이다. '대나'는 아이누어 기원이다. '습하다', '젖다', '축축한'을 나타낸다. '물 있는 계곡이 있는 산'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채록된 아이누어 방언에서 '데이네' 혹은 '데네' 드물게 '도이레'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대나오름은 물이 있는 오름의 뜻이다.

답인오름의 '답인'이란 바로 전 회 족은대비악에서 밝힌 바와 같다. 퉁구스어 '물이 많은'을 나타내는 '댑-' 기원이다. 그러니 답인오름 지명 역시 '물이 많은 오름'이란 뜻이다. 절물오름, 대나오름, 답인오름은 같은 뜻이다. 모두가 어두음이 'T'로서 '돌'계 지명이다. 후대에 몽골어계, 아이누어계, 퉁구스어계로 분화하긴 했지만 같은 조상어에서 기원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언어 화석이 켜켜이 쌓인 지층을 보는 듯하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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