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백록담
[이상민의 백록담] 비판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25. 02.17. 03:30:00
[한라일보] "비판 기사를 쓸 때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오로지 사실과 근거에 기반해 써라." 초임 기자 시절 한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다. 원래 모든 기사는 사실과 근거를 토대로 써야 하지만, 당시 선배가 새삼스레 되짚어 준 이유는 아마 비판 기사를 쓸 때는 이런 원칙에 더욱 엄격해야 비판을 받는 당사자도 수긍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피감기관 앞에서 호통치는데 익숙한 정치인들도 선배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비판의 힘은 목소리가 크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커지는 게 아니다.

오영훈 지사가 최근 해양수산부를 비판하는 일이 잦다. 오 지사는 지난해 12월쯤 제주~칭다오 항로 허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해수부가 기존 항로와의 영향평가를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자 "정부가 틈만 나면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시대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제주도를 무시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직격했다. 올해 2월에는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제주~칭다오 항로 개설 과정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며 다시 한번 해수부를 비판했다. '무시', '이중적 행태', '차별' 등 해수부를 비판하는데 쓰인 단어들을 보면 오 지사가 얼마나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오 지사로선 지난 2023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공을 들였고, 지난해 말에는 입항 행사까지 준비했지만 정작 허가가 나지 않아 행사를 취소했으니 허탈하기도 하고, 체면도 이만저만 구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허가가 이뤄질 줄 알고 화물 하역 크레인을 미리 배치하는 바람에 매달 1억원가량 혈세가 낭비되는 점도 뼈아픈 일이다. 제주도의 난처한 처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수부를 비판할 논거로 쓰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해수부에 허가를 신청한 한·중 컨테이너선 신규 항로는 모두 4개였다. 이중 제주~칭다오 신청이 지난해 11월로 가장 늦고 우한~부산이 같은 해 9월로 가장 빨랐다. 정부는 신청 시점이 가장 빠른 우한~부산 항로부터 지난달 말 개설을 동의했고, 현재 최종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2020년 개설된 평택~중국 항로의 경우 신청에서부터 허가까지 총 6개월이 걸렸다. 다른 지자체 한·중 항로는 동의에 4개월, 허가에 6개월 정도 걸렸지만 오 지사는 제주~칭다오 항로 허가가 한 달 만에 이뤄지지 않자 불만을 품고 정부를 비판했다.

'왜 제주만 빨리 허가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오 지사는 이번엔 "해수부가 갑자기 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며 마치 면제해 주기로 했다가 뒤통수를 쳤다는 식으로 비판 논리를 세웠다. 그러나 제주도 담당 공무원마저 "영향평가를 면제해 주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오 지사의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됐다.

오 지사는 당시 비판의 논거와 대상이 합리적이었는지 되짚어 보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적이 비판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데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이상민 정치경제부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