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바야흐로 대중의 상상력이 새로운 정치를 열어나가는 '정치의 문화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기실 정치와 문화는 별개의 영역이다. 흔히들 '정치·경제·사회·문화'라고 나누곤 하는 영역 간 구분에서도, '정치는 정치, 문화는 문화'인 것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문화연구자들이 말하듯, 문화는 삶의 총체다. 그러니 문화는 인간사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에도 문화가 있다. 권위주의 엘리트 정치문화다. 정치문화는 엘리트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원천적으로 오류다. 근대사회의 정치적 장을 만든 힘의 원천은 민중혁명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을 거치면서 조선의 민중은 정치의 최전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3·1운동을 통해 백성에서 민중으로 거듭나며, 제국에서 민국으로 전환했다. 해방 후 4·19와 5·18, 6·10과 촛불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을 재편해온 한국의 민중은 민주주의 위기 상황마다 정치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필자가 정치의 문화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촛불 이전과 이후의 차이 때문이다. 촛불 이전의 민중항쟁이 남성성 기반이었다면, 촛불 이후의 민중항쟁은 여성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전자가 '총 vs 총', '최루탄 vs 화염병'의 대립 구도 아래 폭력의 충돌로 이뤄졌다면, 후자는 촛불문화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 광장의 공론장은 폭력적 대결의 장이 아닌 문화적 공감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론, 촛불 이전에도 위대한 광장 문화가 있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한 예술운동은 이후 민족문화와 민중문화라는 두 갈래로 뻗어나가며, 특유의 운동권 문화를 형성했다. 김지하에서 김민기, 이애주, 홍성담, 노찾사, 그리고 꽃다지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지하 골방에서 너른 광장에 걸쳐 도도한 민중문화가 흘러넘쳤고, 그것은 사회변혁의 자양분으로서 찬란하게 꽃피었다. 세월이 흘러 21세기 촛불의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광장을 주도한 것은 민중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와 노래와 춤과 연주였다. 윤석열 탄핵 정국의 2030 응원봉부대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대형기획사의 장삿속에 맞춰진 K팝 소비자들이 콘서트장에 들고 나타나 흔들어대던 LED 조명이 거리를 장악했다. 박근혜 탄핵 때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꺼진다'던 김진태의 말이 무색해진 것. 종이컵을 씌워 조심스레 손에 들던 촛불 대신, 형형색색 응원봉이 신나는 K팝 리듬에 맞춰 현란하게 춤추는 탄핵 광장. 그것은 '아날로그×디지털, 민중문화×대중문화, 남성문화×여성문화'로의 문화적 공진화를 보여줬다. 특히 2030 여성들의 집중력은 여의도와 남태령과 한남동에서의 놀라운 투쟁으로 피어나 숭고의 새 지평을 열었다. 5·18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80세대들이 '87년체제'를 열었듯, 12·3을 경험한 2030의 신명으로 '새로 만날 세계'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김준기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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