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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죽 한 그릇에 담긴 격세지감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9.26. 00:00:00
[한라일보] 내가 죽을 먹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절대로 입에 대지도 않았던 음식이었다.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 시절 보릿겨에 조, 감자, 고구마, 지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물 따위가 짓물러진 채 섞인 죽을 먹어야 했다. 맛은 둘째치고 늘 배가 고팠다. 양도 적은 데다 배가 금방 꺼졌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실컷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때 죽이라는 음식에 어찌나 질려버렸는지, 수십 년 동안 먹지 않았던 것이다.

소년과 노년의 시간은 인생의 극과 극에 놓여있지만, 나에게 죽은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릴 때 먹을 게 없어서 먹었던 죽이라는 음식이, 노인이 되니 입맛이 없을 때 먹는 음식이 됐으니 말이다.

아직도 나는 죽 한 그릇을 앞에 놓으면 배곯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이후 입에 대지도 않던 죽을 다시 먹기까지 내가 겪은 세월과 시대의 변화를 가늠하면 먹을 게 흔한 지금의 세상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노인의 날' 즈음이어서 그런가. 죽 한 그릇에서 큰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죽 한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당연하지 않은 노인들이 적지 않음을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김계담 대한노인회 문부로 경로당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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