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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대법원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무죄 취지 파기환송
대법원 "피고인 진술 객관적 사실과 배치 직접 증거 없어"
사실상 무죄 판단…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 커져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23. 01.12. 11:24:33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한라일보 자료사진

[한라일보] 1999년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이 다시 미궁에 빠졌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2일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와 방송국 관계자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5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3년 6개월(살인 12년·협박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대법원은 "김씨의 제보 진술 주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고, 범행 현장 상황 등만 종합해 손모씨와 김씨의 살인 고의 및 공모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죄로 판단했다.

전(前) 유탁파 행동대원이었던 김씨는 '갈매기'라고 불리던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2014년 8월 사망)씨에게 범행을 시켜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48분쯤 제주시 삼도2동 북초등학교 인근에서 이승용 변호사(당시 44세)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누군가로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혼 내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손씨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초 사건 발생 당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20년간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김씨가 지난 2019년 10월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며 반전을 맞았다. 김씨는 방송에서 "이 변호사에 대한 상해를 사주 받고 손씨와 함께 범행했는데 일이 잘못돼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취지로 인터뷰했다. 경찰은 이후 재수사에 나서 캄보디아에 불법 체류중이던 김씨를 붙잡았다.

앞서 지난해 2월 1심은 김씨의 협박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선고했다. 1심은 김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지만 직접 증거가 없고 기능적 행위 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무죄 선고 이유를 들었다. 기능적 행위지배란 두명 이상이 범죄 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분담했을때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형법 이론이다. 예를 들어 절도범죄에서 물건을 훔치지 않고 망만 봤다고 해도, 망 보는 것도 절도에 꼭 필요한 역할을 분담한 것이기 때문에 방조범이 아니라 절도죄의 공범으로 처벌된다.

반면 2심은 "김씨가 범행을 모의·실행하는 과정에서 손씨의 행위로 이씨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미필적 인식이나 예견을 하고 이를 용인하며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해 실행 행위를 분담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또 ▷김씨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이 당시 언론보도는 물론 수사기관에서도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이라는 점 ▷방송 인터뷰 과정에서 여러 번 '우리'라는 표현을 한 점 ▷동거녀 등 지인에게 "범행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고 말한 점 등을 토대로 정황 증거로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1심과 2심에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 피고인 진술도 객관적 사실과 일부 배치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김씨는 1999년경 유탁파 두목 백모씨의 집에서 피해자를 혼내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백씨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며 "이후 김씨는 다른사람이 지시를 했다고 진술을 번복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김씨는 손씨가 199년 범행 후 도피해 4~5년동안 제주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손씨는 2001년경 제주시에서 행인과 말다툼하다 상해를 가해 범행한 사실이 있고, 또 이후 피고인이 손이 제주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다고 말하며 번복하는 등 모순되거나 일관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살인 공모에 대해서도 "손씨가 피해자와 몸싸움 과정에서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했더라도 손씨에게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지만 이런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싸움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현장에 있지도 않던 김씨에게까지 살인의 고의와 공모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대법원은 "진술의 주요한 부분에 배치되는 객관적 사정이 밝혀져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경우에 나머지 진술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나 증거가 제시돼야 하지만 그러한 직접 증거가 없다"고도 했다.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함에 따라 추가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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