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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살당보민 살아진다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1. 07.14. 00:00:00
심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 쓰는 방법 두 가지. 뜨개질엔 시작과 끝을 찾아 최대한 올올이 풀어 쓴다. 단추를 달거나 풀린 실밥을 정리하는 정도의 바느질에는 마디로 잘라 쓴다. 실 끝을 잡고 묶인 부분까지 바싹 당겨 자르면 잘린 자리에서부터 풀린다. 짧은 한 올도 쓰임이 있으니 뭉치에 붙여둔다. 뭉치 그대로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쓴다. 아프거나 슬픈 기억도 마찬가지다. 길게 풀어낼 수 없을 땐 마디에서 잘라낸다. 사실, 척하며 견디는 나름의 방법이다.

선배의 장지에 다녀왔다. 어린 날 만났고, 한때 아주 가까웠는데 뉴스기사로 보는 부고라니 이보다 더 생경할 수 없다. 각자 제 삶을 사느라 먼 소식으로만 듣다가 이제 그마저 들을 길이 없어졌다. 화려하게 좋은 날이 있었다. 폭풍의 회오리 같은 격랑이 있었다. 내동댕이쳐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암흑의 수렁이 있었다. 오랜 좌절과 분노와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있었다. 이제 가고 없는 시간, 부질없는 권력과 무심한 세상인심은 새삼스러울 것 없고 영정 속의 환한 미소가 야속하다. 조그만 시골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치러지는 동안 나는 그저 그의 어린 날을 더듬는다.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따스하고 유쾌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그곳에 모였으리라. 가족묘지는 왠지 어수선해 보이고, 높게 자란 측백이 그늘을 만들까 걱정되다가, 누운 자리마저 살짝 기울어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위태롭던 생전의 모습처럼 서럽다. 마스크 안에 갇힌 울음은 내리는 는개처럼 흐른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가 이렇게 유용하게 실감되기도 처음이다. 사십년 전 선물로 받은 책이 있다. 짧은 줄글의 얇은 그림책 네 권. 뚜껑을 열면 속지마다 쓰인 한 줄의 친필 메모. 어쩌다 유품이 되었다.

사십년 전에도, 그처럼 갑자기 떠난 친구가 있다. 반 친구 중 누구보다도 크게 웃던 그 아이가 세상을 버렸을 때 나는 오래도록 격하게 상실을 앓았다. 그날 이후 나는 끝까지 살아남기로 한다. 그때처럼 지금도, 극단적인 그의 선택에 함부로 토는 달지 않기로 한다. 인연은 잠깐이고 각자의 생이 있으니 또 다른 생을 사는 것이라고 애써 위안한다. 이제 우리의 어린 날은 공유자가 가고 없으니 우리만 기억하겠다. 부고가 뜬다. 죽음마다 안타깝다. 어제까지는 있었으나 오늘은 없는, 비워진 자리만큼 대기로 채워지는 부재의 존재. 삶은 흘러간다.

어쩌다보니 어제는 종일 빌어먹었다. 미수가루와 쑥절편, 포장배달 해 준 삼계탕, 찐 옥수수와 단 호박. 이렇게 호의를 먹고 덕분에 산다. 소박한 살림이라 살짝 넘친다. 단조로운 나의 하루는 좀 하찮다. 별일 없어 행복하다. 출퇴근길에 밥 나눠주는 고양이를 만나면 보람차다. 일터에서 굽는 과자가 잘 나오면 기쁘다. 눈 뜨면 반려묘의 화장실을 치워주는 일. 나서기 전 마실 물을 갈아주고 밥그릇을 채워주는 일. 퇴근하면 휘리릭 집안을 살펴 무고를 확인하는 일. 잠깐이지만 쓰다듬어주고 놀아주다가 잠드는 일들로 하루가 저문다. 베개 밑 기도는, 가능하면 오래도록 일하며 건강하게 잘 살자. 아주 사소하게나마 하루를 살아낼 것. 견디고 있을 것. 살다보면 살아질 것이므로.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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