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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한권의 책] (2)난주
신념 잃지 않고 위대한 삶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6.25. 00:00:00
제6회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정난주 마리아의 신산한 생
집안 몰락 제주목 관노비로
짠내음 배이듯 마지막 사랑
잘 정돈된 소설의 문장 느껴

제주도의 역사와 풍토, 서민들과 노비들의 학대받는 삶을 바탕으로 하는 이 소설은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 명망 있는 조선 명문가의 장녀였던 '정난주 마리아'가 신유박해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후 제주목 관노비가 되어 견뎌야 했던 신산한 삶을 그려낸다. 역사와 종교, 실존 인물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개성 있는 문체로 녹진하게 녹여냈으며, 당시 제주의 풍습과 방언 등을 뛰어난 수준으로 고증하고 복원해내었다. 제6회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저자 김소윤, 출판사 은행나무>





▶대담자

▷오지영 :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제주살이 7년 차 주부.

▷이용호 :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제주민요문화연구소장.

이용호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오른쪽)이 '난주'의 독자 오지영(왼쪽)씨와 '책방 무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이용호 :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오지영 : 작가가 정한 책의 제목은 '난주'이거늘 천주교 신자인 나는 자연스레 '정난주 마리아'로 읽게 된다. 종교적인 성향의 도서를 읽을 때 편견에 얽매여 보게 될까하는 노파심에 읽으면서 중간중간 마음을 정리하느라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정난주가 사학에 심취하였고 패륜을 저질렀다는 죄명 하에 제주목의 관노비로 유배되는 과정과 학대받는 삶을 역사와 천주교를 바탕으로 그려냈는데 그렇다고 종교적 성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삶에 죄명으로 못 박힌 천주교도는 그녀에게 강한 믿음으로 한 층 더 성숙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위대한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더하여 잘 정돈된 소설의 문장과 감칠맛 나는 제주어를 음미하며 소설 읽는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이용호 : 여인으로서 난주의 삶은?

▷오지영 : 난주의 삶이 부와 명예를 지닌 양반에서 보잘것없는 관노비로 바뀌었지만, 그녀도 여인이었다. 그녀의 총명한 남편 황사영은 천주교를 만남으로 인해 난주를 단지 종교에 대해서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난주를 인정해 준 것이기에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기존 양반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아내, 즉 여인네들을 향한 존경이 극히 드물었을 시대이기에 그런 마음을 받은 난주는 사랑이라 느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흥진비래라고 해야 할까? 남편 황사영과 함께한 천주교도의 삶까지가 행복이었다면 신유박해로 남편인 황사영의 백서가 발각되어 참형에 처하고 집안은 몰락하며 난주는 제주도 관노비가 되었다. 관노비가 되면서 다시금 인연이 되어준 정방호는 그녀의 암흑 같은 관노비의 삶에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고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정방호의 마음은 어느덧 난주에게 닿았다. 관노비의 삶이 버거웠던 난주에게 바닷바람 짠 내음이 옷깃에다 배이듯이 정방호의 마음 또한 난주의 마음에 배어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리운 이름이었고 또한 마지막 사랑이었다.

▷이용호 : 어머니는 세상 무엇보다 강한 존재라고 본다. 어머니로서 난주에 대한 생각은?

▷오지영 : 난주에게는 어머니로서의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아들에게는 대역죄인의 자식으로 그리고 관노비로 살길 바라지 않았기에 추자도에 남겨둔다. 세상 어느 어미가 제 자식과 생이별을 바라겠는가. 그녀가 자신의 손끝을 물어 피를 내어 아들의 옷자락 깊숙이 '경신년 황경헌'이라고 쓴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닌 아들이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 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남겨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하며 품은 또 다른 어머니와 자식의 인연은 보말과 연이었다. 아들 경헌을 대신하여 마음으로 품은 자식이었다. 그런 삶의 끝자락에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던 그리운 아들 경헌을 만나는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어머니로서의 난주가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가는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이용호 : 온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여 자녀들을 수산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제주생활의 장단점은?

▷오지영 : 2014년에 제주로 이주해서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학교가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수산초등학교였다. 학교가 너무 예쁘고 시설과 교육 또한 육지 못지않아서 아이들이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듯이 주변에 학원이 없으니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학업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오히려 선생님과의 유대 관계도 더 좋을뿐더러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마을 분들 모두 열린 마음으로 맞아주는 이곳이 저희 가족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노력하고 마음을 다하니 정을 나누어 주시는 좋은 분들이 많다. 한 가지 고충이 있었다면 이주해 오고 얼마간은 제주도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인 오일장에 가서, 혹은 식당에 가서 주인장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실수를 한 적이 많았다. 이제는 웬만한 대화는 사투리로 해도 잘 알아듣는다.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작은 아들이 제법 사투리로 말을 하곤 한다. 가끔 육지 부모님 댁에 가면 어른들께서 신기하게 바라보시는데 아이도 그 상황을 살짝 즐기는 듯 보일 때도 있다. 촌스러움이 아닌 어울림으로 긍정적인 미소를 보이는 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귤꽃향이 마을 가득한 이곳에서 가족모두 무탈하게 지내는 것이 행복임을 알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이용호 : 책읽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오지영 :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에 손이 먼저 가는 건 저 중에서 선택하면 실패는 없겠지 하는 나름의 핑계인 것 같다. 의미를 부여한다기 보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진실한 나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듯이 책 또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쉼 없이 읽다가 때론 더디게 읽히더라도 그래도 책을 읽고 있다는 자기만의 만족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먼저 고르게 된다.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하여 읽었으면 좋겠지만 부모 욕심에 읽히고 싶은 책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생각해보니 매일 밤 작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던 남편도 글이 너무 많으면 힘들어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책을 읽지만 그림이 많은 책을 고르는 아이와 글 밥이 많은 책을 고르는 엄마는 오늘도 행복한 씨름을 한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책방 무사]

'(한)아름상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뮤지션 요조가 제주도에 홀려서 서울 종로 계동에서 이전했다. 쉽게 발걸음 할 수 있는 책방이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서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책은 지양한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보다는 아쉽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좋은 책들을 많이 이끌어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늘 무사(無事)하세요'라는 말로 자주 인사하곤 한다. 책방 이름이 '무사'여서 책방에 자주 오라는 장난스러운 중의법이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 인사가 정말 간절하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책방에 와서 "뭐하는 책방이냐"는 한심한 질문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책방 무사는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수시로 10번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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