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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7주년]세계자연유산 개척자 부종휴(1) 프롤로그
용암동굴·한라산 구석구석 자원 발굴 기념비적 업적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입력 : 2016. 04.22. 00:00:00

지난 3월 15일 부종휴 선생이 재직했던 김녕초등학교에서 그의 제자들인 김두전 옹을 비롯 김시복, 원장선, 홍재두, 강위문 옹 등 모두 5명의 꼬마탐험대를 대표해 만장굴과 용암동굴 탐험이야기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강경민기자

부종휴와 그의 제자들 '꼬마탐험대'
1946년 만장굴 탐사 올해로 70주년
빌레못·수산동굴 등 용암동굴 탐험
한라산 미개척 '식물의 보고' 부각
각계 인사 참여 기념사업회 곧 출범


세계인의 보물, 만장굴이 세상에 드러난 때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이다. 올해로 70년이 흘렀다. 당시 김녕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던 한산(漢山) 부종휴(1926~1980) 선생과 그의 코흘리개 제자들인 '꼬마탐험대'가 전인미답의 만장굴의 실체와 태고의 신비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탐사대장은 부종휴였고, 대원들은 그가 재직중인 김녕국민학교 6학년 제자들이었다. 부종휴는 이들을 '꼬마탐험대'라고 불렀다. 당시 대원은 횃불(조명)반, 유류운반(보급)반, 측량반(기록) 등 3개팀에 30명쯤 됐다.

생전 동굴탐사중인 故 부종휴(사진 맨 왼쪽). 사진=한라일보 DB

그로부터 70년이 훌쩍 흐른 지금 부종휴는 물론 그의 꼬마탐험대 제자들도 대부분 유명을 달리했다. 5명의 생존자도 80을 넘긴 나이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하지만 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만큼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동굴탐사였으며 쾌거였던 것이다. 부종휴와 꼬마탐험대의 이야기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제주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인 만장굴을 세상에 알린 최초의 역사다.

얼마전 '부종휴와 꼬마탐험대'의 생생한 육필 체험수기가 만장굴 최초 탐험 70년이 흘러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지상(地上)으로 탈출한 만장굴'. 꼬마탐험대의 주역으로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두전(82·제주시 거주)옹이 생존자들과 함께 7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생생한 만장굴 탐험체험의 전모를 되살려냈다.

故 부종휴

지난 3월 15일 제주시 구좌읍 김녕초등학교(교장 양인자)에서는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만장굴, 꼬마탐험대 이야기'. 이 학교 출신으로 70년 전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스승을 따라 미지의 만장굴을 처음 탐험했던 '꼬마탐험대'의 생존자들이 그들의 생생한 만장굴 탐험과 한라산 답사 이야기를 풀어놨다. 강연에는 김두전(83)옹을 비롯해 김시복, 원장선, 홍재두, 강위문 옹 등 생존자 5명이 모두 함께 했다.

만장굴 개척은 부종휴가 남긴 업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광복 이후 식물과 동굴, 산악, 고고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제주 곳곳을 누볐다. 만장굴 외에도 빌레못굴과 수산굴, 서귀포 미악 수직굴 등 제주의 수많은 용암동굴들과 그 속에 묻혀 있던 고고·역사적 유물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가 일궈낸 개가였다.

그는 한라산 박사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정상만 350여회 등정하며 미기록 식물 등 한라산 자원의 개척자였다.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혼자 한라산의 식물을 조사하고 학계에 알렸다. 1400여종에 그쳤던 한라산 식물에 300여종을 새롭게 찾아냄으로써 오늘날 한라산을 2000여종이 자생하는 '식물의 보고'로 부각시켰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적십자산악안전대 창립을 주도하고, 한라산 곳곳을 누비며 10개의 등반코스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 제주 산악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이러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조사는 한라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 토대가 됐다. 그가 1974년 집필한 '한라산 천연보호지구, 자원보고서'는 그 결정판이다.

그의 업적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갈 무렵 2015년 4월 기념사업회를 꾸리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12월에는 '한산 부종휴선생 기념사업회(재단)'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서는 고민수 전 제주시장을 기념사업회 재단 이사장에, 부이사장에 강만생 제주 유네스코등록유산관리위원회 위원장(제주역사문화진흥원장)을 추대했다. 기념사업회에는 부만근 전 제주대 총장, 홍경희 도의원, 꼬마탐험대 주역 김두전 옹,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두루 망라됐다. 기념사업회는 법인으로 등록되면 공식적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올해 기념물 건립과 업적 기록화 및 발굴사업도 추진된다.

기념사업회는 설립 취지서에서 "제주의 자연자원이 세계적인 가치로 인정받은 오늘날에 부종휴 선생과 같은 선구자에 대한 업적을 기념하고 제주의 자연문화유산에 대한 보호활동과 제주도 연구사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기념사업 번번이 무산… 숱한 우여곡절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이 추진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제주인으로서 한라산과 동굴 탐사를 비롯해 고고학, 산악활동을 넘나들며 근 1세기 동안 그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도 드물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람들 뇌리 속에서 잊혀져갔다. 기념관은커녕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흉상이나 전시관, 공적비조차 찾아볼 수 없다.

도의회 등 각계 필요성 제기

작년 추진위원회 발족 '희망'

기념물 건립·기록화 등 본격

본보, 부종휴 10여년째 추적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스승 부종휴와 함께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탐험정신과 용기를 보여준 꼬마탐험 대원들의 이야기도 세월이라는 지우개에 지워져 갔다. 그를 따라 미답의 동굴탐험에 성공했던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역들인 코흘리개 어린 학생들은 현재 몇 명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

 그동안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 추진에 대한 논의는 수차례 있어 왔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4년 11월 한라산연구소와 한라일보사 공동 주관으로 한라산과 부종휴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제주도는 부종휴 선생에 관한 기념사업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2014년에는 두 차례 검토된 부종휴 선생의 업적 발굴 용역이 예산 편성과 심사 과정에서 제외됐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회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부터다. 홍경희 도의원은 제주도의회 정례회 도정질문 등을 통해 부종휴 선생과 꼬마탐험대에 대한 각종 기념사업 추진 등을 강력히 주문해 그 불씨를 당겼다. 이어 기념사업회 발족을 위한 총회가 열리고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라일보가 부종휴 선생과 꼬마탐험대를 추적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태계 보물섬 제주, 백년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특집기사를 연재하던 중 그가 한라산 박사로서 크나큰 족적을 남겼음을 확인, 재조명 작업에 들어갔다. 그해 한라산연구소와 공동 주관으로 학술심포지엄도 열었다. 이어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제주 세계자연유산을 빛낸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부종휴 선생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등 그의 업적에 대한 재조명과 기념사업 추진 필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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