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제주 건강보고서 3H
[생로병사]식욕과 건강식
입력 : 2013. 12.20. 00:00:00

심순섭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때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은 뇌의 가장 바깥쪽에 발달해 있고, 그 안쪽에는 변연계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본능이나 감정과 관계가 많다고 합니다. 식욕, 성욕, 소유욕, 지배욕, 무리본능 등등. 이러한 본능은 쾌락을 느끼게도 혐오감을 느끼게도 만듭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성과 본능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능이 주는 감정에 붙들려 다른 정상적인 삶에 지장을 주게 된다면, 그건 중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식욕과 관련하여 경험한 사례를 얘기하겠습니다. 어떤 건강책에 꽂혀서 그대로 한두달 정도 열심히 따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의 요지는, 대표적인 해로운 음식인 오백(五白=다섯가지 하얀 것)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백은 흰 설탕, 흰 정제소금, 흰 화학조미료, 흰 밀가루, 흰 백미였는데, 이것을 먹지 않으려면 대신 먹을 것들(현미, 야채, 된장, 식초, 천일염, 해조류, 깨, 멸치 등)로 음식을 직접 해 먹고 도시락까지 싸야 했습니다. 살펴보면 우리가 즐겨 먹는 군것질거리는 대부분 이 오백을 주재료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1~2주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현미가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데다가, 오백을 뺀 음식들이 처음엔 맛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적응기간을 지나고 나서는 입맛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오백이 혀를 속여서 오백이 잔뜩 들어 있는 소수의 음식만 맛있는 음식이었는데, 입맛이 바뀌고 나서는 혀가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돼 많은 음식들이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염세적인 눈에서 낙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것처럼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식욕을 충족시키려고 사람들이 맛있는 오백을 찾게 되었는데, 그러는 중에 사람은 오백이 아니면 식욕을 잃게 되었습니다. 오백이 잔뜩 든 음식에 배부르며 건강도 해치게 되었습니다. 본능이란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본능을 좇아서 이를 충족시키려다 보면 점점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삶의 소소한 행복은 느낄 수 없게 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삶은 황폐해지고 망가져 갑니다.

본능이란 것을 만드신 신이 실수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고자 좇아가는 우리는 그 도중에 많은 보람과 위로와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행복감도 우리가 일부러 충족시키지는 않았지만 본능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심순섭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