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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건강보고서 3H
[생로병사]암을 이기는 밥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13. 08.09. 00:00:00

한상훈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저희 아버지가, 어머니가, 남편, 아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수술할 수 없는 4기 암 환자 가족들에게 거의 항상 질문을 받는다. 이때는 우선 기존의 의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평균적인 예상을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 수치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예로 어떤 암은 '4기인 경우 열심히 치료시 평균 1년 정도 생존할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평균 1년'이란 것이 마치 수명처럼, 365일째 되는 날 갑자기 악화해 세상을 등지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항암제가 잘 듣고, 식사도 잘해 기력을 회복하면 1년이 아니라 2~3년 이상 치료를 잘 유지하면서, 마치 당뇨병,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조절하듯이 암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내는 환자도 있다. 가족들과 온천여행이나 등산도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손주도 돌보는 등 많은 추억을 만들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유감스럽게도 암세포의 기세가 호랑이처럼, 산불처럼 너무 사나워서 항암제를 써도, 혹은 교체해도 거의 듣지 않고 폐렴 등 합병증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환자들의 투병의욕이 줄고 식욕이 떨어질 수가 있다. 이때 환자가 식사를 거르게 되면 체중이 줄고 체력이 떨어져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1년이 아니라 2~3개월조차 버티지 못하고 환자들을 일찍 떠나보내게 되기도 한다.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지켜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에 가까워지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항암제 치료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로 병을 이기게 하는 힘은 '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항암제가 환자에게 잘 듣거나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투병 중 악순환을 끊도록 '밥'을 먹는 것은 환자와 가족들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항암치료 시 고기든 채소든 과일이든 맛있게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치료가 힘들고, 식욕이 떨어져 입맛이 없을 때엔 원하면 커피라도 마시거나 오랜만에 라면이나 자장면을 맛있게 먹어도 된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잘못된 의학상식에서 비롯한 환자 가족들의 편견과 행동이다.

'고기를 먹으면 오히려 암을 키운다, 더 나아가 고기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OO나무뿌리, XX버섯이 암에 좋다더라…' 등 각종 매체나 병원에서 호객하는 장사꾼들의 잘못된 정보에 환자의 가족들은 위축되고 현혹된다. 정작 환자가 정말 원하고 체력을 회복할 음식들은 못 먹게 막고, 근거 없는 소위 '항암식품(?)'에 편중하는데, 환자의 투병을 가족들이 일부러 돈을 들여가며 막는 격이다. 자칫 급성 간염, 신부전증으로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식단이 서구화되며 대장암 발생확률이 높아진다는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식습관과 암이 무관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평소 암을 예방하기 위해 식습관을 조절하는 것, 그리고 이미 암이 생겨서 이에 맞서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의 두 가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고르지 않고 부족한 식사로 단백질보충이 중단되고, 영향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암을 이겨내려는 것은 그야말로 굶주린 병사에게 전쟁터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디 암과 싸우는 내 가족에게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마음껏 들게 하고, 악순환을 끊으며 몸도 마음도 암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내도록 응원해 주자.

<한상훈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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