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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봉
[삼각봉]침묵하는 다수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입력 : 2005. 11.24. 00:00:00


 사람이 사는 일에는 사람이 중심에 있는데도 무시되고 법만이 만사를 좌지우지할 때 흔히들 “사람 나고 법 나왔지, 법 나고 사람 나왔느냐” 라는 말을 한다. 이즈음 제주도의 현실이 꼭 그 옛말을 낳게 한 상황과 너무나도 닮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를 광역권에 흡수하는 주민투표도 ‘법에 의해서’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행정도 중의 하나인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바뀌는 일들이 다 법이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1일에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관련 법안을 확정한 후 대통령이 재가하면 25일을 전후해 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에 있다고 그 일정을 전하는 ‘제주도행정체계 등에 관한 특별법안’ 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의 행로를 보면 그 현실이 더욱 자명해진다.

 사람 사는 사회에 법이 마련된 것은 보다 잘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누구나가 잘 살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시점에서는 다 물 건너 간 이야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주도민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력이 행사될 행정구조 개편 및 특별자치 등 제주도의 큰 변화 앞에 왜 제주사람 대다수가 침묵하는지 지방정부의 관련 공직자는 물론이려니와 중앙정부도 신중하게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고 권하는 바이다. 뭘 어쩌지 못하여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가치규범의 무규제 상태 즉 아노미론이 지적하는 바 혼란의 극대화가 부른 침묵은 아닌 지를 제주사회 깊숙이 헤집고 들여다봐야 될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참여할 여지가 거의 없을 때는 사회참가를 거부하게 되어 있다. 이 때에 거부의 제스처로 목소리를 내는 소수보다 침묵하는 대다수의 결단은 그 사회의 재편, 개편을 막론하고 매우 그 실행이 힘들어진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법 앞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제도이용이 용이한가, 욕구의 충족이 가능한가를 상시 점검하게 되어 있다. 법은 의무를 수행하는 만큼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을 받는 장치의 근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위 특별한 것은 법이든 규정이든 다 지역의 보편적 정서와 역사적 체험 그리고 정신성을 융단처럼 덮고 있는 독특한 공동체적 삶과 남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험들은 무시되거나 반대로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특별법도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게 중심을 전자에 둘 것인지 아니면 후자에 둘 것인지를 먼저 제주도민과 함께 심사숙고하고 합의를 전제해야 된다. 단지 시간으로만 계산하여 오래전부터 공론화 했었으니 이제 때가 다 되었다라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게 마련이다. 무엇을 두고 누구와 어떻게 공론을 했느냐 하는 논의의 과정은 정말로 중요하다. 정작 도민은 제쳐놓고 법학자와 관련 공직자, 몇몇 프로젝트 수행자만이 참가 범위에 속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분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침묵하는 대다수는 어쩌면 행정구조개편과 특별자치도 설치에 관한 사회여론형성과정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살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자살이란, 인생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하였다는 강한 느낌 위에서 강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제주도의 현실이 너무 버거워 현실 도피의 의미로 대다수의 도민이 그 최후의 길을 택했어도 재생을 기약하는 무의식적 소망까지는 저버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태환 지사는 특별법상에 담지 못한 것, 그 법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조례로 보완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조례와 규정 등은 모법을 토대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제주도민 대다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살하게 하여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침묵하는 다수를 무서워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림화/작가·제주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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